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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2 기준 최신판



갑오개혁 이후의 공문서로, 상관이 하관에게 또는 관장(官長)이 소속 관원에게 내리는 명령서.

개설

훈령(訓令)은 관서의 장이 소속 관원에게 내리는 훈시(訓示)나 명령, 또는 상부 관서에서 하부 관서에 내리는 전령(傳令) 등을 의미하는 공문서의 명칭이다. 갑오개혁으로 근대 공문서 규칙이 만들어지면서 훈령이 기존의 관(關)·전령·감결(甘結)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공문서 체계와 양식이 상당 부분 흡수·진전된 근대적 공문서 체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1895년(고종 32) 3월에 칙령(勅令) 제64호로 각령(閣令)·부령(部令)·훈령·고시(告示) 및 지령(指令)의 구분 규정이 재가·반포되었다(『고종실록』 32년 3월 29일). 이때 훈령은 법률·명령의 범위 내에서 장관이 소속 관원에게 훈시나 명령을 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종전까지 사용하던 관칙(關飭)과 지령·감결 등을 다 폐지하고 훈령으로 개칭한 것인데 이는 조선시대 관문 서식 중 관·전령·감결이 모두 훈령으로 대체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어 같은 해 6월 1일에 ‘공문유별급양식(公文類別及式樣)’이 제정되었다. 이는 갑오개혁 후 관청에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용(日用) 공문(公文)의 종류와 양식을 재편성하여 관청 간의 문서 체계를 간소화하고자 제정한 것이다. 훈령의 문서식은 그림과 같이 예시되어 있다.

P00009163 01.PNG

이 문서식이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훈령이나 지령 등에 서압(署押)하던 규례를 폐지하고 관장(官章)을 대신 사용하도록 규정한 점이다.

하지만 이 공문서식 제정으로 중앙과 지방의 공문서까지 모두 바뀐 것은 아니었다. 특히 지방의 경우는 근대식 공문서로의 변용이 늦어져 1900년대에 들어서도 전령·감결·보장(報狀)과 같이 이미 폐지된 문서 양식이 계속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1896년(건양 1) 8월에 칙령 제45호 ‘지방관리응행체제(地方官吏應行體制)’를 제정하여 근대적 공문서식의 사용을 재차 강조하게 되었다(『고종실록』 33년 8월 7일).

변천

조선시대의 관은 관서 상호 간에 주고받는 관용 문서로서, 동등한 관서 상호 간 또는 상급 관서에서 하급 관서에 보내는 문서였다. 전령은 각 관의 수령이 관하의 면·리임이나 관속(官屬)에게 지시·명령하는 문서를 의미했다. 한편 감결은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지시하는 문서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관·전령·감결이 훈령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이 세 문서의 기능을 모두 포괄하는 문서가 훈령이라는 뜻이 된다.

1895년 ‘공문유별급양식’의 제정에 따라 공문서의 명령과 보고 체계가 정립되면서 내부(內部)에서 관찰사, 관찰사에서 목사, 목사에서 군수에게 하달하는 문서는 훈령으로 하도록 결정되었다. 훈령은 이때 정립된 다른 일용 문서와 함께 이후 대한제국기, 식민지기를 지나서도 그 대체를 유지하였다.

1896년에 반포된 ‘지방관리응행체제’에서도 역시 제2조에서 관찰사가 관하(管下) 목사·부윤·군수에게 보내는 문서는 훈령과 지령으로 하도록 명시함으로써 지방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던 근대 공문서 양식이 정착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참고문헌

  • 김건우, 「한국 근대 공문서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 김태웅, 「갑오개혁 전후 지방 공문서 관리의 변화」, 『규장각』 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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