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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1 기준 최신판



숯불을 담을 용도로 만들어진 청동 그릇.

개설

화로(火爐)는 숯불을 담아놓는 그릇으로 아궁이에서 불씨가 남은 숯을 모아 생활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불이 필요할 때마다 불을 붙이는 것이 힘들어 불씨를 보관하는 방안에서 고안되었다. 차나 음식을 끓일 때, 인두를 달구어 바느질이나 다림질을 할 때, 겨울에 방 안을 따뜻하게 할 때, 여행 시에는 가마 안에서 사용하는 손난로인 수로(手爐)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흙, 돌, 무쇠, 놋쇠, 청동, 백동 등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연원

정확한 발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청동기시대의 화덕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덕은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 만든 것으로 아궁이와는 별도로 음식물을 데우고 굽는 데 사용되었다. 이 시기 화덕은 집 자리 가운데 땅을 파고 주변에 돌들을 쌓아 둘러놓은 것이다.

철기시대에 와서는 주변 테두리를 진흙으로 만들어 둘렀다. 함경도에서는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한 목적으로 부엌과 안방 사이에 정주간을 만들었는데 이 정주간 한끝에 진흙을 쌓아서 만든 등듸가 설치되었다. 등듸는 아궁이의 불을 옮겨서 음식을 끊이는 데 사용하였으며 방의 온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마루 중앙에 마룻장을 뜯어내고 현무암의 안쪽을 파낸 뒤 숯을 놓는 봉덕을 설치하였다. 함경도의 등듸와 제주도의 봉덕이 이동 가능한 형태로 발전한 것이 화로이다.

특징

화로의 중요한 용도는 불씨 보관이었다. 불씨는 단순히 불을 붙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불을 관리하는 것은 여성의 가장 중요한 의무였기에 며느리들이 불씨를 꺼뜨리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이는 불의 신이었던 조왕신(竈王神)을 잘 모셔야 불이 그 집안의 가세와 재물을 지켜준다는 믿음에서 발전하였다. 따라서 이사할 때는 며느리들이 화로에 불씨를 잘 챙겨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으며 종가에서 분가할 때에는 맏아들이 새로 들어가는 집에 불씨 화로를 들고 먼저 가는 관습이 있었다.

화로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부삽, 불돌, 부젓가락 등의 보조 기구가 필요하였다. 먼저 부삽은 재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재를 누르거나 불을 옮기는 데 쓰는 작은 삽이며, 불돌은 불씨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재를 덮고 그 위에 올려놓는 돌이다. 부젓가락은 불을 헤치거나 숯덩이를 옮기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긴 젓가락 형태로 주로 쇠나 놋쇠로 제작하였다.

화로의 종류는 제작한 재료에 따라 흙으로 만든 질화로, 돌화로, 무쇠화로, 놋쇠화로, 청동화로(靑銅火爐), 백동화로 등이 있다. 청동, 백동, 황동은 구리합금으로 구리와 결합한 원소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따라 빛깔이 구분되었으며 황동은 일반적으로 놋쇠로 불리었다.

질화로는 다리가 없이 밑바닥이 넓은 항아리와 같은 모습으로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으며 민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무쇠화로는 질화로와 비슷하나 바닥에 발이 셋 달려있으며 손잡이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상류층에서 많이 쓴 놋쇠화로는 입구에 비교적 넓은 전이 달려있고 개다리 형태의 다리가 달려있다. 따뜻한 기운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돌화로는 사각형의 형태에 양 옆에 쇠를 꿰어 손잡이를 달았다. 백동화로는 수복(壽福)과 같은 문자와 상서롭고 좋은 것을 상징하는 길상무늬를 은실을 이용하여 문양을 새기는 은입사(銀入絲) 기법으로 제작하여 매우 장식적이고 화려하였다.

화로는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던 필수 살림살이로, 형편에 따라 서민층은 질화로나 무쇠화로를 사용하였으며 상류층은 놋쇠화로, 청동화로, 돌화로, 백동화로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김광언, 『한국의 주거민속지』, 민음사, 1988.
  • 김용덕, 『한국민속문화대사전』, 창솔, 2004.
  • 이정복, 『한국의 화로』, 동산도기박물관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