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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1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기억에 의지하여 선왕의 어진을 그리는 일을 지칭하는 용어.

개설

조선시대에는 왕의 초상을 영정 또는 어진(御眞), 어용(御容)이라고 하였다. 어진을 그리는 방식은 직접 현왕을 보고서 그리는 도사(圖寫), 선왕의 영정을 토대로 하여 다시 그리는 모사(模寫), 선왕이 돌아가신 후 기억에 의지하여 그리는 추사(追寫)가 있었다. 추화(追畵)라고도 한다.

유래

조선전기에 선왕 선후의 옛 모습을 바라보고 추모하기 위해 선원전(璿源殿) 봉심이 정기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를 위해 초상화를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왕이나 왕후의 초상을 그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명종대의 기록에 따르면 세자 때 죽은 덕종의 어진을 성종이 최경에게 추사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추사한 최초의 사례이다. 성종의 어진 또한 승하한 후에 그렸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1545년에는 중종의 어용을 추사하였다(『인종실록』 1년 1월 22일). 중종이 생전에 어진을 그리지 않아 옮겨 그릴 원본이 없자, 어용의 기억을 더듬어 그린 후 인종과 내정에서 살펴보고 제대로 그려졌다고 인정하였다. 훗날 이것이 너무 닮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사왕과 내정에서 인정한 본이라 하여 수리한 후 보존하였다(『명종실록』 4년 9월 14일). 인종도 역시 생전에 그려둔 어진이 없었으나, 유교(遺敎)에 의하여 추화하지 않았다(『명종실록』 즉위년 7월 24일).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 열린박물관, 2007.
  • 조선미, 『한국초상화연구』, 1983.
  • 윤진영, 「왕의 초상을 그린 화가들」, 『왕의 화가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