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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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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응사군 |
한글표제 | 응사군 |
한자표제 | 鷹師軍 |
관련어 | 응사(鷹師), 응방(鷹坊)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연산군 |
집필자 | 김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응사군(鷹師軍)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1년 9월 2일 |
응사(鷹師)로 이루어진 군대.
내용
응사는 매사냥에 쓰이는 매를 훈련시키거나 부리는 사람을 뜻한다. 연산군은 매사냥을 매우 즐겨 1497년(연산군 3)에 대비전(大妃殿)에 신선한 고기를 바쳐야 한다는 명분으로 좌·우 응방(鷹坊)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 좌·우 응방에 응사를 배치하였으며 두 달 뒤에는 “좌·우 응방의 예비 응사를 매번 8명씩 증가하도록 명하다.”라는 바와 같이 응사를 계속 증가시켰다. 응사군(鷹師軍)이라는 용어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산군의 폐정을 지적하는 사신(史臣)의 말에서 단 한 번 나와 분명하지는 않지만 매사냥꾼인 응사로 이루어진 군대를 뜻하는 용어로 보인다.
용례
史臣曰 燕山 (중략) 都城四面 限百里立禁標 以爲遊畋之所 入標內者 論以棄毁制書律 常以單騎 馳騖往來 不計晨夜 別設鷹師軍萬餘名 田獵常令隨從(『중종실록』 1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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