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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0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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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체용 |
한글표제 | 체용 |
한자표제 | 體用 |
관련어 | 이본체론(理本體論), 현미무간(顯微無間), 성학(聖學), 성리학(性理學) |
분야 | 문화/인문학/유학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김봉곤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체용(體用)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13년 11월 4일, 『현종개수실록』 5년 10월 28일, 『명종실록』 2년 1월 25일, 『선조실록』 즉위년 11월 17일, 『인조실록』 16년 5월 1일, 『효종실록』 1년 8월 4일 |
세계를 실체와 기능, 본질과 현상의 통일로 해석하는 철학 개념.
개설
체용(體用)은 위진 초기에 왕필(王弼)이 "만물이 귀하지만 무(無)를 용(用)으로 하니, 무를 버리고서는 체(體)라고 할 수 없다."고 하여, 현상 배후의 본질 존재로서 무형의 체와 본질이 표현하는 작용으로서 용의 개념을 밝힌 데에서 유래한다.
이후 불교에서 체용을 논하여 절대적 초월의 보편 존재를 체, 구체적이고 상대적인 현실의 존재를 용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불교의 체용은 현실 세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모든 현상의 본성에 대한 분별이 끊어진 상태인 성공(性空)을 진실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성리학에서는 이를 ‘체는 있되 용이 없다[有體無用]’고 비판하였다.
이에 성리학에서는 유(有)의 철학을 건립하였다. 실유(實有)를 근본적인 보편 존재로 간주하고, 본체는 잠재된 것으로 직접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상대적인 현실의 존재를 통하여 드러난다고 이해하였다. 북송대의 주돈이는 무극태극(無極太極)의 체(體)로, 소옹은 음양과 동정의 실체와 작용으로, 장재는 태극을 우주본체, 만사만물을 본체의 표현 내지 작용으로, 이정(二程)은 형이상자의 체와 형이하자의 용으로 각각 우주론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체용 개념은 주희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 주희는 태극과 음양, 리와 기, 도(道)와 기(器)는 모두 체용의 관계이며 본체와 작용의 관계로 규정하였다. 기와 사물은 생성 관계이므로, 형이하자이며 또한 현상계이다. 형이상의 리(理)만이 본체론적 존재이다. 체용의 선후 관계에 있어서는 체가 먼저이고 용이 뒤이다. 그러나 체용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체가 용이 되고 용이 그 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본질이 현상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여, 도의 체는 허다한 사물상에 있다고 하였다. 이에 그는 대상에 대한 관찰을 중시하고 경험에 대한 귀납과 총괄을 중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자학을 수용함에 따라 리 본체론에 입각한 체용 관념이 우세하였다.
내용 및 특징
체용의 개념을 둘러싼 논의는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였던 중종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조광조는 『성리대전(性理大全)』이 체용(體用)과 본말(本末)을 다 갖추어 천문지리(天文地理)·예악법제(禮樂法制)·성명도덕(性命道德)의 이치와 역대 군신의 현부(賢否)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여 『성리대전』의 효용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으며(『중종실록』 13년 11월 4일), 조선후기에는 특별히 이황이 중시한 『심경(心經)』이 체용(體用)과 종시(終始)를 갖춘 책으로 간주되었다(『현종개수실록』 5년 10월 28일).
또한 체용 개념은 배움의 순서에도 적용되었다. 즉 1547년(명종 2) 부제학주세붕은 먼저 『소학(小學)』을 익혀 방심을 거두고 덕성을 길러서, 『대학(大學)』에 나아가 사리(事理)를 살피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하여 『소학』과 『대학』 공부가 서로 체용이 되는 관계라고 하였다(『명종실록』 2년 1월 25일).
수신과 정치의 두 측면에서도 체용 개념이 거론되었다. 예컨대 선조대에는 기대승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체용의 학문이라고 하여(『선조실록』 즉위년 11월 17일), 수기치인의 도리에서 체용 관계를 밝혔으며, 인조대에는 부제학이경여가 국왕의 마음가짐이 체용의 현미 사이에 모두 천리에 맞으면 이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화란이나 재변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인조실록』 16년 5월 1일). 그리고 송시열은 주자의 학문이 정치를 논하면서 도학에 뜻을 두었기 때문에 다스림에 있어서 도를 체득했다고 하여 이것이야말로 제왕의 본통(本統)이며 성학의 연원이라고 주장하였다(『효종실록』 1년 8월 4일). 이처럼 선조대 이후 학자들은 수신에 바탕을 둔 도학이 체이고, 정치는 그 용이라고 하여 체용의 현미무간(顯微無間)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 박영사, 1990.
- 溝口雄三, 丸山松幸, 池田知久, 『中國思想文化辭典』, 東京大學出版會, 2001.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