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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9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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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조등 |
한글표제 | 조등 |
한자표제 | 刁蹬 |
상위어 | 공납(貢納) |
관련어 | 방납(防納), 사주인(私主人), 각사이노(各司吏奴), 공리(貢吏), 점퇴(點退) |
분야 | 경제/재정/공물·진상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박도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조등(刁蹬) |
관원이 근거 없이 물건 값을 조작하여 높게 책정하는 것.
개설
방납(防納)은 각 군현에서 중앙 각사에 바치는 공물·진상 가운데 그 지역 백성이 준비할 수 없는 물품을 그 군현의 경주인(京主人)이나 관청의 관속(官屬) 등이 대신 바친 후에 그 값을 군현의 농민에게 받아 내는 것을 말하였다. 조등은 이 같은 행위가 가능하도록 관속이나 수령과 결탁하여 교활하게 추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하였다.
내용 및 특징
대동법이 실시되기 전에는 수많은 공물·진상을 각 군현에서 시기에 맞추어 중앙으로 올려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들 물품 중에는 그 고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도 있고, 시기에 맞추기 어려운 것도 있고, 또 올려 보내도 품질이 떨어진다며 수납되지 못하는 이른바 점퇴(點退)되는 것도 있었다. 그러자 상납의 책임이 있는 군현에서 공물을 서울에서 마련하여 납품하도록 청탁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이때 그 수고에 대한 보수가 적지 않아 이 이익을 노리는 부정행위가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 나아가서는 각 군현에서의 공물 상납을 아예 포기시키고 몇 배에 달하는 대가를 억지로 긁어 가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행위를 합쳐서 방납(防納)·조등(刁蹬)이라 일컬었다.
중앙 각사에서 공납 업무를 담당하던 자들은 지방 각 군현에서 상납하는 공물에 대하여 갖가지 구실을 붙여 점퇴한 다음, 그 공납 의무를 대행하고 나서 비싼 대가를 강제로 징수하였다. 그 주역이 사주인(私主人)과 각사이노(各司吏奴)였다.
지방 각 군현이 공물을 납부해야 할 중앙 각사는 여러 곳이므로 지방관을 대리해 이들 사주인이 공물을 방납하였다. 각사이노는 공물 수납을 담당하였던 실무자라는 점에서 방납 활동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각사이노는 공리(貢吏)가 바치는 공물이 아무리 품질이 좋다고 하더라도 온갖 이유로 물리치고 방납한 후에 성화같이 독촉하면, 공리는 견책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 요구를 들어주고 나서야 겨우 바칠 수 있었다.
변천
공물을 현물로 대신 쌀·포(布)로 납부하는 대동법을 실시하면서 조등 행위는 크게 줄어들었다.
참고문헌
- 박도식, 『조선 전기 공납제 연구』, 혜안, 2011.
- 이정철,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역사비평사, 2010.
- 田川孝三, 『李朝貢納制の硏究』, 東洋文庫,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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