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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8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지방 행정 단위의 기본이던 주(州),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대상으로 그린 지도.

개설

조선시대 국가나 지방 수령이 주도하여 지역의 통치와 행정 편의를 위해 제작된 지도이다. 조선전기에는 군현지도의 제작이 국가 주도의 지리지 편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고, 16세기 이후에는 각 읍 단위의 지리지인 읍지 제작이 보편화되었다. 군현지도의 유형은 표현 양식에 따라 회화식과 기호식, 판종에 따라 목판본과 필사본, 축척에 따라 대축척과 소축척, 제작 형태에 따라 단독 군현지도와 여러 군을 모은 군현지도집, 지리지에 포함된 군현지도로 구분할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군현지도의 제작은 태조대에 왕실의 태실이 입지할 지역의 지도를 그리게 하였던 데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393년(태조 2) 태실 증고사권중화가 전라도 진동현(珍同縣)의 산수형세도(山水形勢圖)를 바치고, 아울러 충청도 대부분 지역에 해당하는 양광도(楊廣道) 계룡산(鷄龍山)의 도읍지도(都邑地圖)까지 바쳤다(『태조실록』 2년 1월 2일). 권중화가 바친 진동현지도는 태실 안치를 위한 길지를 파악하여 이를 보고하기 위한 것으로 태실이 들어설 산봉우리의 산형을 중심으로 주변 형세를 조망할 수 있도록 그린 지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1453년(단종 1) 세조가 정인지(鄭麟趾)에게 상나라 「우공(禹貢)」의 지리 제도와 주나라 『주관(周官)』의 관제를 상고하여, 조선의 지리와 관제를 상정(祥定)하게 하였다. 이때 세조는 「조선도도(朝鮮都圖)」, 「팔도각도(八道各圖)」, 「주부군현각도(州府郡縣各圖)」를 각각 1건씩 제작하고, 조선 백관의 관명(官名)·직사(職事)·관리 수를 기록하도록 하였다. 이에 정인지는 『고려사』 「지리지」를 편수한 양성지(粱誠之)를 천거하여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단종실록』 1년 10월 17일). 여기서 「조선도도」는 조선 전역을 그린 전도에 해당하며, 「팔도각도」는 조선의 팔도를 각 도별로 그린 도별도, 「주부군현각도」는 행정 구역별로 제작된 군현도를 말한다. 따라서 전도, 도별도, 군현지도를 한 세트로 제작하고 조선 백관의 관직명과 하는 일, 관리의 수를 파악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자료로 삼고자 하였다.

1455년(세조 1) 평안도경차관양성지가 여연, 무창, 우예 등 세 고을의 지도를 가지고 와서 바치고, 또 평안도 무창의 상봉포(上奉浦), 여연의 금창동(金昌洞), 우예의 혼야동(昏夜洞) 등지에 새로 목책을 설치하였으니 이들 지역에 만호를 임명하여 변방 방비에 힘쓸 것을 건의하였다(『세조실록』 1년 11월 10일).

1724년(영조 즉위) 호조 판서오명항(吳命恒)이 관서 지역을 순찰하면서 압록강 인근 7개 읍을 둘러보고 고개의 험준한 형세와 각 고을의 읍지도를 그려와 비변사에서 보관하게 하였다(『영조실록』 즉위년 10월 15일).

현전하는 군현지도는 대부분 18세기 이후 제작된 것으로 일정한 축척을 이용하여 제작한 방안식 군현지도와 일정한 장황 형식에 맞춰 모든 군현을 일괄 제작한 회화식 지도가 있다. 방안식 지도는 주로 비변사에서 주도하여 제작한 것이 많으며, 회화식 지도로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여지도서』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해동지도』, 『지승』, 『여지도』, 『광여도』 등이 있다.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군현지도집인 『해동지도』와 『여지도서』는 지리지의 부도(附圖) 역할로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김기혁, 『군현지도의 특성과 고지명』, 푸른길, 2010.
  • 배우성, 「영조대 군현지도집의 편찬과 활용」, 『한국학보』 81, 일지사, 1995.
  • 양보경, 「조선후기 군현지도의 발달」, 『문화역사지리』 7,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1995.
  • 양윤정, 「18세기 『여지도서』 편찬과 군현지도의 발달」, 『규장각』 43,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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