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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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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조수라 |
한글표제 | 조수라 |
한자표제 | [朝水剌] |
동의어 | 아침수라 |
관련어 | 아침진지, 조반(朝飯)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한복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조수라([朝水剌)] |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에게 올리는 아침밥을 높여 이르던 말.
개설
조선왕조에서 왕이나 왕비의 평소 일상의 식사는 5차례인데, 이른 아침의 자리조반[初朝飯], 아침의 조수라(朝水剌)와 저녁의 석수라(夕水剌), 낮의 낮것[點心]. 밤에 내는 야참[夜食]이다. 대개 이른 아침에는 보약을 드시고 약을 안 드시는 날에는 미음·응이·죽을 차린 초조반을 드시고, 아침수라[朝水剌]는 10시가 지나야 드시고, 저녁수라[夕水剌]는 오후 5시경에 드셨다.
내용 및 특징
1700년대의 궁중의 일상식은 1795년(정조 19) 정조가 화성현륭원(顯隆園)에 행행(行幸)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찬품(饌品)조에 남아 있다. 음력 윤2월 9일에 창덕궁을 출궁하여 음력 윤2월 16일에 환궁까지 8일간 자궁·왕·군주께 올린 일상식의 기록이다. 행행 도중에 올린 식사는 행궁인 화성참(華城站)을 제외하고는 중로(中路)인 역참에 있는 이동식 주방에서 마련하였다.
궁중에서 병후 회복을 위하여 육즙을 조수라로 올린 기록이 있다. 1545년(명종 즉위) 병중에 왕이 아침수라를 전보다 약간 많이 드셨는데 만약 조금 평안해지셨다고 도로 육즙(肉汁)을 물리치면 증세가 반드시 다시 나타날 것이라 하였다[『명종실록』 즉위 8월 19일 2번째기사].
변천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일정 중에 조수라는 9일은 노량참(鷺梁站)에서, 10일은 시흥참(始興站)에서, 11~15일은 화성참(華城站)에서, 16일은 시흥참에서 총 8회 올렸는데, 한 회의 그릇 수는 13~15기였다. 화성참에서 윤2월 12일 아침에 자궁께 올린 조수라상은 15기로 원반과 협반에 차렸다. 음식 내용은 반 1기는 팥물로 지은 밥이고, 갱 1기는 냉이국[薺菜湯]이고, 조치 2기는 저포초 1기와 건청어초 1기이다. 구이는 은어 구이 1기, 편육은 양지머리 편육 1기, 자반 1기는 담염민어·반건대구·육장·쇠고기다식[黃肉茶食]·꿩편포[生雉片脯]이다. 숭어전 1기, 젓갈 1기는 대구란·석화해이고, 채(菜) 1기는 거여목[苜蓿]·싱검초로 만든 채이다. 침채 1기는 석박지[交沈菜]이다. 담침채 1기는 산갓김치이고, 장 3기는 간장·초장·고추장 각 1기이다.
1800년대 후반인 고종과 순종 재위 당시 수라상은 조석 2차례 올렸는데, 12첩 반상차림으로 수라와 탕 2가지와 기본 찬품과 쟁첩에 담는 12가지 찬물들로 구성되었다. 수라는 백반(白飯)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인 붉은 빛의 홍반(紅飯) 2가지를 수라기에 담고, 탕은 미역국(藿湯)과 곰탕 2가지를 모두 탕기에 담아 올리어 그날에 따라 좋아하시는 것을 골라서 드시도록 준비하였다. 조치는 토장조치와 젓국조치 2가지이고, 찜·전골·침채 3가지가 기본 음식이었다. 찬물 12가지는 다양한 식품재료로 조리법을 각기 달리하여 만들었다. 상 위에 놓이는 장류는 청장·초장·윤집(초고추장)·겨자집 중 그날의 찬물에 맞게 종지에 담는다.
참고문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
-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1987.
- 황혜성 외, 『李朝宮廷料理通攷』, 학총사, 1957.
- 김호, 「조선시대 食治 전통과 왕실의 식치」, 『조선시대사학보』45 , 2008.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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