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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의 소렴(小殮) 과정에서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이불을 싸서 묶은 후에 진홍공단(眞紅貢緞)을 덮는데, 이 진홍공단 위에도 분가루로 보불을 그려 덮는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2406029_001 『정조실록』 24년 6월 29일]). 상여나 관을 가리는 삽의 무늬로도 사용되었는데 보문과 불문, 운문을 그린 삽을 각각 [[보삽(黼翣)]], [[불삽(黻翣)]], 운삽(雲翣)이라고 하였다. 삽은 백저포(白苧布)로 만들어 주사(朱砂)로 보불과 구름을 그려서 사용하였는데, 나중에 [[명정(銘旌)]]과 함께 땅에 묻었다. | 상례의 소렴(小殮) 과정에서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이불을 싸서 묶은 후에 진홍공단(眞紅貢緞)을 덮는데, 이 진홍공단 위에도 분가루로 보불을 그려 덮는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2406029_001 『정조실록』 24년 6월 29일]). 상여나 관을 가리는 삽의 무늬로도 사용되었는데 보문과 불문, 운문을 그린 삽을 각각 [[보삽(黼翣)]], [[불삽(黻翣)]], 운삽(雲翣)이라고 하였다. 삽은 백저포(白苧布)로 만들어 주사(朱砂)로 보불과 구름을 그려서 사용하였는데, 나중에 [[명정(銘旌)]]과 함께 땅에 묻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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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5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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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보불 |
한글표제 | 보불 |
한자표제 | 黼黻 |
상위어 | 장문(章文) |
하위어 | 보문(黼紋), 불문(黻紋) |
관련어 | 구장복(九章服), 보삽(黼翣), 불삽(黻翣), 십이장복(十二章服)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의복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소현 |
용도 | 문양 |
시기 | 조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보불(黼黻)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24년 6월 29일 |
면복의 하상(下裳)에 수놓아 표현하는 12장문(章文)에 속하는 문양.
개설
왕이 대례복과 제복으로 입는 면복의 하상에 수놓아 표현하는 문양이다. 보문(黼紋)은 도끼 모양의 무늬이며, 불문(黻紋)은 아자(亞字) 형태의 대칭형 기하문이다. 보문과 불문을 합하여 ‘보불(黼黻)’이라고 할 때에는 문장(文章)의 찬란함을 비유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일(日), 월(月), 성신(星辰), 산(山), 용(龍),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 조(藻), 미(米), 보(黼), 불(黻)의 12장문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문양의 수(數)에 따라서 황제는 십이장복(十二章服), 왕은 구장복(九章服)을 입었다. 상례에서 시신에 덮는 이불의 무늬로도 사용되었고, 상례를 거행할 때에 액을 막고 악귀를 퇴치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삽(霎)의 무늬로도 사용하였다.
형태와 용도
보문은 도끼 모양의 무늬로 결단을 상징한다. 불문은 아(亞) 자 형태의 대칭형 기하문으로 신민(新民)이 악을 멀리하고 선을 좇으라는 배악향선(背惡向善), 군신이합(君臣離合)의 이치를 나타낸다. 면복의 하상에는 보문과 불문의 문양을 수를 놓아 표현하였다.
상례의 소렴(小殮) 과정에서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이불을 싸서 묶은 후에 진홍공단(眞紅貢緞)을 덮는데, 이 진홍공단 위에도 분가루로 보불을 그려 덮는다(『정조실록』 24년 6월 29일). 상여나 관을 가리는 삽의 무늬로도 사용되었는데 보문과 불문, 운문을 그린 삽을 각각 보삽(黼翣), 불삽(黻翣), 운삽(雲翣)이라고 하였다. 삽은 백저포(白苧布)로 만들어 주사(朱砂)로 보불과 구름을 그려서 사용하였는데, 나중에 명정(銘旌)과 함께 땅에 묻었다.
참고문헌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