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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금강암(보광사)]] |
− | | + | *[[금강암(보현사)]] |
− | {{개념용어|대표표제=금강암|한글표제=금강암|한자표제=金剛庵|대역어=|상위어=불교(佛敎), 사찰(寺刹)|하위어=|동의어=금강굴(金剛窟)|관련어=보현사(普賢寺), 이인좌(李麟佐), 황진기(黃鎭紀), 현기(玄機)|분야=문화/종교/불교|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왕대=|집필자=이종수|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731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ua_11301009_001 『영조실록』 13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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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안북도 향산군묘향산 보현사의 산내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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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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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암(金剛庵)은 묘향산 보현사의 산내 암자로서 금강굴(金剛窟)이라고도 불렸다.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중기 서산 대사 청허휴정이 주석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바위굴을 이용해 지붕을 이어 만든 건물로 유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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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용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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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암은 평안북도 향산군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산내 암자인 영신암(靈神庵)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암자이다. 커다란 바위 밑에 건축되어 자연적인 바위와 인위적인 지붕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때문에 금강굴로도 불렸다.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서산 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이 주석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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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조대에 승려 현기(玄機)가 금강암에 거처하고 있던 법훈(法訓)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훗날 첩문(帖文)을 위조한 도둑으로 체포되어 여러 사람을 무고(誣告)하였다. 현기가 스승 법훈에 대해 말하기를,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도망친 황진기(黃鎭紀)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법훈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금강암에 거처하던 두 명의 법훈을 조사한 결과 거짓으로 판명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1301009_001 『영조실록』 13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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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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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문화연구원 편저, 『북한사찰연구』, 사찰문화연구원 출판부,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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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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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ml><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17311"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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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문화]][[분류:종교]][[분류:불교]][[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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