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의장(凶儀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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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國喪)의 발인(發靷)과 부묘(祔廟), 능(陵)·원(園)·묘(墓)의 천장(遷葬) 등에 동원되거나 사당과 묘소 등에 배치하던 의장.

개설

흉의장에는 깃발과 무기, 산선(繖扇)과 요여(腰輿) 등 길의장(吉儀仗)에서 사용하던 것들이 동원된다. 다만 상장례를 거행하는 것이므로 흉의장에는 의장의 색깔이 다르거나 만장(挽章)명정(銘旌), 안마(鞍馬) 같이 국장에만 사용하는 것이 나타난다.

내용 및 특징

의장 행렬은 반차(班次) 노부(鹵簿)로도 불렸다. 노부는 의장을 갖춘 왕의 행렬을 의미하였으며, 왕이 행행할 때 따르는 의장의 배열 순서를 뜻하기도 하였다. 노부는 규모에 따라, 대가노부(大駕鹵簿), 법가노부(法駕鹵簿), 소가노부(小駕鹵簿)로 구분되었으며, 용도에 따라서는 길의장, 흉의장, 황의장(黃儀仗), 홍의장(紅儀仗)으로 나뉘어졌다. 원래 노(鹵)는 큰 방패를 뜻하는데, 방패를 든 사람이 왕의 외부를 호위하는 것으로 그 차례를 적은 문서를 노부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왕실 의장에서 흉의장은 상장례를 거행하던 국장 행렬이나 국장 이후 종묘와 능·원·묘 등에 배치하던 것을 말한다. 국장에는 발인과 부묘제에 흉의장들이 동원되었으며, 왕과 왕비의 행차 시에 동원되던 의장물과 유사한 것이었다. 다만 상장례였으므로 의장물의 색깔과 복식에 차이가 있었다. 종묘와 능원묘 등에 배치하던 흉의장은 의장 행렬에 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이 지정된 장소에 비치하던 것이다. 예컨대 흉의장에서 깃발과 산선(傘扇) 등은 종묘와 능원묘에 행사가 없을 때에도 의장용으로 배설되고 있었다. 종묘의 경우 신위가 모셔지는 각 실마다 의장물이 갖추어졌으며, 청개(靑蓋)·홍개(紅蓋)·봉선(鳳扇)·작선(雀扇)·가마·무기류 등을 설치했다.

변천

흉의장은 시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를 않았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왕실 상장례가 증가됨에 따라 흉의장 행렬이 자주 사용되었다. 인조반정과 효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의 왕위계승은 왕의 생부와 생모인 사친(事親)에 대한 추숭과 묘소의 천봉을 자주 하게 하여 흉의장의 사용이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조선후기로 갈수록 흉의장의 행렬에 동원되던 사람들이 상복을 입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고종대에 오면 의장 행렬에 참가하는 인원이 대부분 흰색의 상복을 착용하였다. 그렇지만 흉의장은 조선전기와 같이 조선후기에도 일반 의장과 같이 상장례라고 해서 특별한 변화를 주지 않고 사용하였다. 방상씨, 명정, 안마, 만장 등의 상례에만 동원되던 의장을 제외하고는 혼례에 사용하던 의장물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고종대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명나라의 황제 의장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의의

흉의장은 조선왕실의 상장례를 대외적으로 상징하던 의장으로 왕실 문화의 일면을 제공해 준다. 특히 중국 역대 왕조와 조선의 흉의장은 유교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므로 동북아시아 상장례 문화 연구에도 이바지할 수 있겠다. 또한 고종대 대한제국의 흉의장은 시대적 변화와 함께 황제국의 의장이 지니는 상징성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 『대명집례(大明集禮)』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