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낭(亥子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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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해일(亥日)과 자일(子日)에 만든 주머니.

개설

비단으로 만든 해낭(亥囊)과 자낭(子囊), 이 두 개의 주머니를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풍년을 비는 뜻에서 곡식의 씨를 태워 주머니에 넣어, 왕이 재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해와 자는 십이지(十二支)의 끝과 처음으로서, 이날 주머니를 만드는 것은 그 한 해 동안의 복록을 그 주머니에 담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원 및 변천

해자낭의 연원에 대해서는 고문헌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국조보감(國朝寶鑑)』에는 연초에 해자낭을 선물로 주는 행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일성록』에는 교정당상(校正堂上) 서명응(徐命膺)이 성묘조(成廟朝)의 사실(史實)을 찾아본 결과 해자낭을 나누어 준[頒賜] 제도가 성종조에 처음 나왔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782년(정조 6)에 해자낭 반사(頒賜)를 다시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정조실록』 6년 1월 2일). 해자낭은 고사(古事)로만 전해지며 예(例)로 행해지지 않다가 정조대에 다시 시작되었다. 1782년 정조는 국조의 고사에 의거해 연초에 문안드리러 온 대신(大臣)·각신(閣臣)·승사(承史)·육조(六曹)의 장관(長官)·오영(五營)의 장신(將臣)·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에게 해자낭을 선물로 나누어주었다(『정조실록』 6년 1월 2일).

형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비단으로 만들며 해낭은 둥근 형태이고 자낭은 긴 형태라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여러 색의 비단으로 주머니를 만들었는데, 여러 색의 실로 만든 끈을 꿰고 술을 길게 늘어뜨린 것이 큰 나비와 같다고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민간에서 상자일에는 쥐가 곡식을 축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일을 손에 놓고 놀았으며, 밤에 불을 밝히지 않고 길쌈을 하거나 의복을 짓는 일도 하지 않았다. 옷이나 천을 쥐가 물어뜯기 때문이다. 해일에는 바느질을 하지 않고 머리도 빗지 않는다. 바느질을 하면 손가락이 아리고, 머리를 빗으면 풍증(風症)이 생긴다고 해서 금하였다. 이 두 날에 곡식을 볶아서 주머니에 넣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보감(國朝寶鑑)』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