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爆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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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일에 벽사(辟邪)의식의 일종으로 대나무에 불을 태워 터뜨리는 세시풍속.

개설

대불놓기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대나무에 불을 놓는다는 것을 줄여서 이르는 말이다. 섣달그믐날 밤인 제야(除夜)와 새해 첫날에 대궐을 비롯한 가정에서도 폭죽을 터뜨렸다. 그 외에도 폭죽은 동지와 같은 절일에 터뜨리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식을 통해 귀신을 쫓고 급성 유행성 열병[溫疫]을 예방한다고 믿었다.

연원 및 변천

폭죽은 중국의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하면 온역(溫疫)이 들게 하는 도깨비의 일종인 산조를 놀라게 하려고 사람들이 대나무를 불에 태워 터트린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러한 축귀의식의 일종으로 행해지는 폭죽과 관련된 행사는 조선후기에 들어 금지되었다. 1777년(정조 1)에 동짓날에 폭죽 터트리는 것을 금지하였다(『정조실록』 1년 11월 20일). 폭죽 행사가 궁중에서 예부터 행해 오던 것이긴 하나, 쓸모없는 일이라 여겨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인 1778년(정조 2)에는 폭죽은 놀이에 불과한 것인데 그에 비해 경비가 많이 들어 특별한 지침이 있지 않는 한 이것을 하지 말 것을 명하였다(『정조실록』 2년 11월 3일).

절차 및 내용

폭죽은 절일의 행사 중의 하나로서, 절일 중에서도 그 규모가 큰 제야와 새해 첫날 그리고 동지 등에도 터트렸다. 『동문선(東文選)』「수세(守歲)」편에 의하면, 정월 초하루 새벽에 정원에서 폭죽을 터뜨렸다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을 지새우면서 이러한 세시 행사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의하면, 제야의 밤에 정원의 중앙에 폭죽을 터뜨려서 온역을 예방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폭죽을 터트리는 이유는 사귀(邪鬼)를 쫓기 위함이다. 이러한 벽사의식을 위해 대포를 쏘거나 불화살[火箭]을 쏘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의하면 제야 전날에는 연종포(年終砲) 혹은 연종방포(年終放砲)라 칭해지는 대포를 쏘기도 하였고, 화전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는 악귀를 쫓는 대나례(大儺禮)에서 기인한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민간에서는 제석의 자정 무렵에 마당에 불을 피운 후 청죽(靑竹)을 불에 태운다. 이 소리가 요란하여 묵은 해 집안에 있었던 잡귀들이 놀라서 모두 달아나고 신성하게 신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속신이 있다.

참고문헌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동문선(東文選)』
  • 『무명자집(無名子集)』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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