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주지(草注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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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사(各司)나 왕실에서 사용하던 두껍고 품질 좋은 고급 종이.

개설

초주지(草注紙)는 저주지(楮注紙)보다 고급 종이로 어람용 등과 같은 중요한 책자 및 문서에 사용하였고, 중앙 기관의 업무용 용지로도 사용하였다. 또한 왕실·중앙 관부 등에서 중요한 물건을 싸거나 덮거나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던 종이이다.

형태

『탁지준절』에 의하면 초주지의 크기는 길이 2자 2치, 너비 1자 5치이다. 길이 2자 2치 5푼, 너비 1자 7치인 저주지에 비해 조금 작은 크기이지만 가격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초주지는 1장 가격이 2전 6푼 6리로 저주지의 6푼 6리에 비해 4배 이상 비싼 종이이다. 특히 황색의 색깔을 입힌 황염초주지(黃染草注紙)의 가격은 3전 2푼 2리 5호이고, 푸른색을 입힌 아청초주지(鴉靑草注紙)는 2전 9푼 8리 5호로 흰색의 일반 초주지에 비해 10~20% 정도 비싼 가격이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초주지는 어람용 의궤 작성에 사용되었던 대표적인 종이이다. 의궤는 행사에 따라 3건에서 8건까지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어람용은 주로 초주지를 사용하였고, 기타 관계 기관 비치용으로는 저주지를 사용하였다. 『선원보략』을 인출할 때에도 진상·봉안하기 위한 용도의 『선원보략』은 초주지로 제작하였고, 배포·내사하기 위한 책자에는 저주지를 사용하였다.

초주지는 어람용·봉안용 책자에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용도를 구분하여 보면 첫째, 국왕이 직접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문서의 종이에 사용된 경우이다. 예를 들면 국왕이 관찰사·절도사·방어사 등에게 내렸던 유서(諭書), 국왕의 명령 문서인 교서 등에 초주지가 사용되었다.

둘째, 왕에게 올리던 문서나 문장에 초주지를 사용한 경우이다. 정승을 새로 뽑을 때 사용하였던 복상단자(卜相單子), 이조에서 추천한 후보자를 국왕이 선택하여 점을 찍었던 낙점지(落點紙), 관원을 채용할 때 원하는 후보자 이름 위에 둥근 점을 쳤던 권점지(圈點紙), 관리들의 포폄(褒貶)을 국왕에게 아뢸 때 작성한 계본지(啓本紙), 중앙 관부에서 국왕에게 중요한 일로 올렸던 장계지, 승문원에서 국왕에게 복명하여 아뢰던 복계지(覆啓紙), 대궐 안 기둥에 써 붙여 주련(柱聯)으로 사용되었던 진상용 춘첩자(春帖子), 정월 초하루를 축하하기 위해 문관들이 국왕에게 지어 바치던 연상시(延祥詩) 등에 쓰이던 종이 등이 해당된다.

셋째, 각 기관에서 사용하던 업무 용지이다. 이조의 행정 업무에 사용되었던 정사지(政事紙), 내의원인 내국(內局)에서 사용하던 후지(厚紙), 족보청에서 작성하여 관리하던 정안지(正案紙), 중앙의 벼슬아치가 지방 출장을 할 때 그곳에 도착 날짜를 미리 알리던 선문(先文)의 종이 등에 초주지를 사용하였다.

넷째, 물건의 싸개 또는 덮개 등의 용도로 사용된 경우이다. 예를 들면 궁중 제사에 쓰는 향과 축문을 관리하던 향실(香室)에서 향을 싸던 첩(貼) 종이, 각전궁(各殿宮)의 비누를 싸던 종이, 얼굴 가리개용 종이[面敍], 의이(薏苡)를 싸던 후지(厚紙), 승정원에서 작성한 자문(咨文)을 싸던 종이, 내국에서 만든 타락죽의 덮개 종이, 애화(艾花)를 싸서 봉하던 종이, 부채를 싸던 종이, 각종 진상물을 싸던 종이, 마른날에 신는 부녀자용 가죽신인 온혜(溫鞋)를 싸던 종이, 내국에서 향을 싸서 봉하던 종이 등에 초주지를 사용하였다.

이외에도 단옷날 궁전의 기둥에 붙였던 단오첩의 종이, 왕이 직접 보던 단초(單抄)의 종이, 유생들의 과거 시험에 사용되었던 종이[儒生試紙], 공조에서 사용한 식선(食扇)의 종이,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이 하사하였던 어사화에 사용된 종이 등도 해당된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보략교정청의궤(璿源譜略校正廳儀軌)』
  • 『탁지준절(度支準折)』
  • 『고사신서(攷事新書)』
  • 『장서각소장의궤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 손계영, 「고문서에 사용된 종이 연구」, 『고문서연구』25, 2004.
  • 손계영, 「조선시대의 초주지와 저주지」, 『서지학보』29, 200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