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사대종(靑畵沙大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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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로 제작된 술을 마시는 음주기(飮酒器).

개설

청화사대종(靑畫沙大鍾)은 세종이 1447년(세종 29)에 성균관에 하사한 주기(酒器) 중 하나이다. 그 밖에도 백사대종(白沙大鍾), 백사대준(白沙大尊)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세종실록』 29년 9월 1일). 청화사(靑畫沙)는 청화백자, 백사(白沙)는 백자를 의미한다. 또한 대종은 잔(盞)이나 배(杯)와 같이 술을 마시는 음주기로, 대준(大尊)은 병이나 항아리와 같이 술을 따르는 짐주기(斟酒器)로 볼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조선초기에 주기는 선대의 뜻을 잇거나 왕의 덕과 은혜를 베푸는 구체적인 행위나 부모에게 극진한 효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세종은 선왕인 태종이 성균관에 하사했던 청화사대종이 깨지자 술, 어육(魚肉)과 함께 청화백자 주기를 하사하며 성리학을 중시했던 태종의 뜻을 잇는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는 윤상(尹祥)의 『별동집(別洞集)』 「성균관준뢰기(成均館賜罇罍記)」, 하연(河演)의 『敬齋先生文集』, 신석조(辛碩祖)의 「성균관수사종준기(成均館受賜鍾樽記)」에는 세종이 하사한 주기를 화종(畵鍾), 백종(白鍾), 백준(白尊), 분종(粉鍾)으로 전하고 있다. 청화사대종은 화종, 백사대종은 백종·분종과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형태

태종이 성균관에 하사했다는 청화사대종은 1417년(태종 17)에는 화종으로, 1655년(효종 6)에는 청화잔(靑花盞)으로 기록되어 있다(『태종실록』 17년 6월 12일), (『효종실록』 6년 7월 13일). 1417년의 기록에서 화종에 술을 한 사발쯤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종이 크기가 큰 잔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종은 조선초기에 명나라에서 유입된 자기에서 많이 보인다. 명나라 초기에 종은 높은 굽다리 위에 잔 형태의 그릇이 놓인 고족배(高足杯)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동문선(東文選)』
  • 『별동집(別洞集)』
  • 『경재문집(敬齋文集)』
  • 김윤정, 「朝鮮初 酒器의 조형 변화와 원인」, 『강좌미술사』 37호,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1.
  • 윤효정, 「朝鮮 15·16세기 靑畵白磁의 製作과 使用―문헌자료와 요지출토품을 중심으로―」, 『美術史學硏究』 250·251호, 한국미술사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