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다종(靑畵茶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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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로 제작된 차를 마시기 위한 잔의 일종.

개설

다종(茶鍾)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차를 마시기 위한 그릇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국장(國葬)이나 명·청나라 사신을 접견할 때 행해지는 다례(茶禮) 등에서 사용되었다. 자기의 품종에 따라서 다종 앞에 백자를 의미하는 분색(粉色), 청화백자를 의미하는 청화를 붙였다. 은으로 만든 은다종이라는 명칭도 보인다.

연원 및 변천

다종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명나라 초기인 1388년(명 홍무 21)에 출판된 조소(曹昭)의 『격고요론(格古要論)』「고요기론(古窯器論)」에 “옛 사람들은 탕병(湯甁)이나 주주(酒注)를 사용하였고 호병(胡甁)과 꺾인 부리가 달린 사발[觜折盂]이나 다종, 대반(臺盤) 등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외국에서 사용하던 것들로서, 중국에서는 원나라 때에야 비로소 사용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여요(汝窯)나 정요(定窯), 관요(官窯)에는 모두 이런 그릇들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1293년과 1296년 등에 원 황실에 바친 금속 그릇 중에 금종(金鍾)이 포함되어 있고, 이색(李穡)의 『목은시고』에도 이우량(李友諒)에게 편지와 다종을 받았다는 내용의 시가 있어서 종(鍾)은 고려말에 중국 원나라에서 유입된 새로운 기종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다종이라는 용어가 1417년(태종 17)에 명나라에서 온 사신이 중궁에게 바친 물건들의 목록에서 처음 확인된다(『태종실록』 17년 7월 21일). 이후에 명나라 사신들이 가져오는 자기 중에 분색다종(粉色茶鍾)·화다종(畵茶鍾) 등이 확인되며, 청화다종은 1450년(문종 즉위)에 명나라 사신 정선(鄭善)이 동궁(東宮)에게 받친 품목에 포함되어 있다(『문종실록』 즉위년 8월 6일).

형태

다종의 형태는 시대마다 달랐던 것으로 판단되며, 정확한 형태는 알기 어렵다. 다만 명나라 초에 번왕(藩王)인 양장왕(梁莊王)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청화 용문 고족배(高足杯)’를 덮고 있던 금제 뚜껑의 명문에서 “정통 2년(1437)에 4량 9전의 금으로 종의 뚜껑을 만들다.”라는 내용이 확인되어, 종의 형태는 현재 고족배로 불리는 기종을 의미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족배는 높은 굽다리 위에 잔 형태의 그릇이 놓인 형태의 그릇이다. 이로써 조선초에 명나라 황실에서 유입된 종은 고족배를 지칭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 왕실에서 국장이나 다례 시에 다종을 사용한 기록은 조선말기까지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중국 『명사(明史)』를 보면, 1369년(명 홍무 2)에 번왕이었던 개평왕(開平王)상우춘(常遇春)의 장례 때 제작된 90개의 명기(明器) 중에 다종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명나라 만력제(萬曆帝) 신종(神宗)의 무덤인 정릉(定陵)에서 주석으로 만들어진 ‘석다종(錫茶鍾)’이 출토된 예가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명사(明史)』
  • 『목은집(牧隱集)』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 湖北省考古硏究所, 『梁庄王墓』, 文物出版社, 2007.
  • 김윤정, 「朝鮮初 酒器의 조형 변화와 원인」, 『강좌미술사』 37호,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1.
  • 윤효정, 「朝鮮 15·16세기 靑畵白磁의 製作과 使用―문헌자료와 요지출토품을 중심으로―」, 『美術史學硏究』 250·251호, 한국미술사학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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