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분(靑磁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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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로 만든 주둥이가 넓은 항아리 또는 단지의 일종.

개설

청자분(靑磁盆)은 1423년(세종 5)에 일본국 축전주태수(筑前州太守) 등원만정(藤源滿貞)과 비주자사(備州刺史) 지상대장씨종(砥上大臧氏種) 등이 사람을 보내어 조선 왕실에 바친 물품 중에 포함된 명대 청자이다(『세종실록』 5년 9월 24일).

연원 및 변천

1423년에 일본국 축전주태수와 비주자사 등이 조선 왕실에 사람을 보내어 물품을 바쳤다.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되는 토산물이었지만 그중에는 청자분 칠십 개와 크고 작은 백자완 이십 개가 포함되었다. 이전에도 일본국 전 구주총관(九州摠管)원도진(源道鎭)이 사신을 보내 자분(磁盆) 5개를 바친 예가 있다(『세종실록』 3년 11월 6일). 1423년에 축전주관사(管事) 평만경(平滿景)이 말안장을 구하면서 바친 물품 중에도 백자다완(白磁茶椀) 열 개, 청자다완(靑磁茶椀) 서른 개, 청자반(靑磁盤) 서른 개 등 적지 않은 수량의 청자 그릇이 포함되었다(『세종실록』 5년 10월 15일).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는 바로는, 15세기 조선에 유구국이나 일본의 사신·상인들이 조선 왕실에 진상한 청자는 모두 15세기 명나라의 용천요나 경덕진요, 복건성 등지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최근에 청진동, 공평동 등지의 서울 시내 발굴 과정에서 15세기 명대에 용천요와 복건성 등지의 가마에서 제작된 청자가 적지 않게 출토되었다.

형태

분(盆)은 시기별로 형태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주둥이가 넓고 속이 깊은 단지나 동이 정도의 그릇을 의미한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15세기 조선에서 어떤 형태의 그릇을 청자분이라고 지칭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1424년(세종 6)에 청주(淸酒)는 병, 탁주(濁酒)는 분에 담았다는 내용과(『세종실록』 6년 9월 29일), 1432년(세종 14)에 과거 시험을 치르는 각 장소마다 간장[醬水] 여덟 분과 술 삼십 병을 하사했다는 기록에서 분은 탁주나 간장 등의 액체를 담기에 적당한 단지나 동이 등의 작은 항아리와 유사한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 14년 4월 3일).

참고문헌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 김영미, 「朝鮮時代 官窯 靑磁 硏究」, 『미술사학연구』 266, 한국미술사학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