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進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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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연(進宴)이나 진찬(進饌)보다 규모가 작고 의식 절차가 간소한 궁중 연향.

개설

진찬보다 작은 규모의 연향을 뜻하는 진작(進爵)이라는 용어는 1827년(순조 27)의 왕세손 탄생 경축연에 처음 등장했다. 그 뒤 1828년(순조 28) 2월의 순원 왕후(純元王后) 40세 경축연과, 1873년(고종 10) 4월의 신정왕후(神貞王后) 모림(母臨) 40주년 경축연이 모두 진작으로 치러졌다. 신정왕후는 헌종이 1834년에 즉위함에 따라 왕대비가 된 분이다.

내용 및 변천

왕실과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베푼 예연(禮宴)의 명칭에는 진풍정·진연·진찬·진작 등이 있었는데, 이 용어들은 동시에 생겨나 공존한 것이 아니다. 진풍정보다 작은 규모의 연향을 뜻하는 진연은 1657년(효종 8)에 생겨났고, 진연보다 간소한 연향을 가리키는 진찬이라는 용어는 1795년(정조 19)에 등장했다. 또 진찬보다 규모가 작은 연향을 의미하는 진작은 1827년(순조 27)에 생겨났다(『순조실록』 27년 7월 25일).

1657년에 인조의 계비이자 당시 왕대비이던 장렬왕후(莊烈王后)에게 올린 연향을 진연이라고 부른 이래 1795년에 진찬이란 용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검약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풍조로 인해 진풍정보다 진연이 주로 행해졌다. 진풍정이라는 명칭은 1686년(숙종 12) 윤4월에 당시 대왕대비이던 장렬왕후의 회갑연을 베푼 뒤로는 쓰이지 않았다.

1795년에 혜경궁의 회갑연을 진찬이라고 부른 이후에는 진연보다 진찬이 주로 행해졌다. 훗날 헌종이 되는 왕세손의 탄생을 경축하는 1827년 연향에 처음으로 진작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 뒤 1828년 2월의 순원왕후 40세 경축연과, 1873년 4월의 신정왕후의 모림 40주년 경축연을 모두 진작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남아있는 19세기의 연향 관련 의궤 10종 중 7종이 『진찬의궤(進饌儀軌)』이고 나머지 3종이 『진작의궤(進爵儀軌)』라는 점을 감안하면, 19세기의 궁중 연향에는 진찬과 진작만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편 진연의 경우 19세기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20세기 즉 대한제국시대에 이르러 다시 사용되었다. 1901년(광무 5) 7월에는 고종의 보령 50세를 경축하여 진연을 베풀었고, 이듬해 4월과 11월에는 각각 고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소와 즉위 40주년을 경축하여 진연을 베풀었다.

참고문헌

  • 김종수, 「규장각 소장 연향 관련 儀軌 고찰」, 『규장각소장 분류별의궤 해설집』,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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