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자(榛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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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과에 속한 낙엽활엽관목인 개암나무의 열매.

개설

개암나무에 열리는 딱딱한 껍질에 유백색의 속살을 가진 견과(堅果)이다. 산에 자생하며, 잘 익은 열매는 갈색으로 9~10월경에 수확한다. 생김새는 도토리와 비슷하고, 맛은 밤과 유사하나 더 고소하다. 식용과 약용으로 쓴다. 조선에서 7월에 종묘에 천신(薦新)하는 물품이었다.

원산지 및 유통

아시아 지역에는 한국 외에 일본과 중국에서도 개암이 생산되었으며, 남유럽에서 서아시아로 퍼져서 지금은 흑해 연안의 터키에서 많이 생산되고, 미국·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진자(榛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의 토산(土産)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평안도 정주목(定州牧), 강계도호부(江界都護府), 의주목(義州牧)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조대에는 조선에서 7월달 천신에 쓰는 진자를 강원도가 이미 봉진하였는데, 경기도의 봉진이 늦어 담당관을 문책하기도 하고, 호조(戶曹)가 사직(社稷) 기곡대제(祈穀大祭)에 쓸 제수(祭需)를 늘려 정한 별단(別單) 중 진자를 경상도나 전라도에 분담한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진자가 전국적으로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잡물(雜物)을 쌀로 바꾸는 법식에서 개암 1말이 쌀 2말에 해당된다는 것으로 보아 쌀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 개암[榛子]을 보기 힘들다.

연원 및 용도

잘 익은 진자는 껍질을 벗기고 생으로 먹기도 하고, 음식의 재료나 약용으로 사용하였다. 진자는 지방분이 50% 이상 들어 있어 기름을 짜면 특유의 고소한 향이 난다. 진자유(榛子由)는 개암나무 씨의 껍질을 벗긴 다음 볶아서 짠 기름으로 반찬에 넣어 먹었다.

『동의보감』에는 진자가 위(胃)와 장(腸)을 잘 통하게 하여 기력을 높이고, 배고픔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고 하였으며, 『산림경제(山林經濟)』에도 진자를 오래 먹으면 배고프지 않다고 하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정조지(鼎俎志)」에는 진자죽(榛子粥)이 허기를 그치게 하고, 속을 편하게 하며, 위장 기능을 강화한다고 하였다.

『시의전서(是儀全書)』에 진자죽을 만드는 법이 나와 있는데, 진자의 속껍질을 벗기고 곱게 갈아 물에 넣어 잡물을 없앤 다음, 멥쌀가루로 무리를 먼저 쑤다가 합하여 쑤면 맛이 뛰어나다고 하였다.

진자는 왕실의 의식(儀式)에서 반드시 쓰인 제물이었다. 예조(禮曹)에서 산릉(山陵)의 개토참토제의(開土斬土祭儀)와 영녕전에서 춘향(春享)·교량제(橋梁祭)·기곡제(祈穀祭)·기고제(祈告祭), 전농의 제향 등을 올릴 때 제찬(祭饌)으로 이용하였다. 진자는 변(籩)에 담아 둘째 줄에 마른 대추와 황률(黃栗)과 함께 진설하였다(『세종실록』 1년 12월 7일)(『성종실록』 6년 1월 25일).

영조대에는 혼전(魂殿)에 공진(供進)하는 채소나 과일의 준비에 폐단이 많아 그 가짓수를 줄였는데, 특히 표고(蔈古)와 진자 같은 것은 드문 종류이니 모두 공진하는 것을 면제하였다(『영조실록』 33년 7월 16일). 고종대에는 제물 가운데 건시(乾柿)가 흙비를 맞아 쉽게 썩는다 하여 대신 진자를 봉진하기도 하였다. 진향사(進香使)가 진상할 과실 중에서 개암과 은행(銀杏)은 제철이 아니라 진상할 수 없을 경우 개암 대신 비자(榧子), 은행 대신 연밥[蓮子]으로 하였다.

생활민속 관련사항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에서 도깨비를 놀래어 달아나게 한 것이 개암이다. 옛날에는 산야에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하지 않다. 대신 서양에서 생산된 헤이즐넛을 많이 수입해 이용하고 있다. 헤이즐넛은 고소한 맛과 향이 있어 커피와 같은 음료나 과자, 초콜릿 등에 쓰인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동의보감(東醫寶鑑)』
  •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 『산림경제(山林經濟)』
  • 『시의전서(是儀全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해동역사(海東繹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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