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척(中和尺)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중화절인 2월 초하루에 정조(正祖)가 신하에게 내려준 자.

개설

중화절(中和節)은 음력 2월 1일로, 농사가 시작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중화척은 왕이 고위관료와 시중을 드는 신하에게 주는 일종의 하사품이었다. 이를 주는 것은 왕을 도와 올바른 정치를 하고 왕의 부족함을 도우라는 의미를 지녔다.

연원 및 변천

중화척을 신하들에게 나눠 주는 행사는 당나라의 중화절 고사를 본떠 1796년(정조 20)에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정조는 중화척을 내리면서 왕의 부족함을 도우라는 의미로 친히 중화절과 관련된 시를 짓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기존에 정월 그믐날을 중화절로 삼았던 것을 당나라 재상 이필(李泌)의 『정월주(正月奏)』에 근거해 2월 초하루로 변경하였으며, 이날 관리들에게 농서(農書)를 올리게 하고 힘써야 할 근본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형태

중화척은 노란색 줄기에 검은 반점이 있는 대나무[斑竹]나 재질이 붉은 적목[赤木]으로 만든다. 자의 크기는 바느질자인 포백척(布帛尺)보다 조금 짧았다. 포백척은 대략 50㎝ 정도로 제작되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중화절은 노비일(奴婢日) 혹은 머슴날이라 부른다. 주인은 농사의 시작일인 중화절에 한 해 농사가 잘되길 기원하며 머슴들을 술과 음식으로 위로하였다. 정월 대보름날에 세워 두었던 볏가릿대인 화간(禾竿)에서 벼를 내려 떡을 만들고, 노비의 나이 수대로 먹게 하였다. 또한 이날은 각 가정에서는 대청소를 한다. 집안을 청소하고 ‘향랑각시여 빨리 천리 밖으로 사라져라’라는 뜻의 ‘향랑각씨속거천리(香娘閣氏速去千里)’라는 구절을 써서 서까래 위에 거꾸로 붙였다. 향랑각시는 노래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붉은색의 주사(朱砂)나 검은색 묵서(墨書)로 부적을 만들어 붙이면 노래기가 없어진다고 믿었다.

참고문헌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홍재전서(弘齋全書)』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도량형』, 1997.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