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척(遵守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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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대에 전제상정소에서 제작한 토지 측량의 기준이 되는 양전척.

개설

고려말의 과전법과 함께 도량형제도가 조선에 그대로 계승되었는데, 척도가 문란해져 표준 척도를 제정하여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세종은 임시로 전제상정소를 설립하여 1430년(세종 12)과 1431년(세종 13)에 표준척을 제정하였다. 이때 제정된 표준척은 7종이었다. 즉, (1)주척(周尺), (2)황종척(黃鐘尺), (3)영조척(營造尺), (4)조례기척(造禮器尺), (5)종서척(縱黍尺), (6)횡서척(橫黍尺), (7)포백척(布帛尺)이었다. 이들 표준척을 근거로 표준 양전척을 만들어 준수척(遵守尺)이라 하였다. 그 길이는 99.296㎝인데, 주척으로 4.775척(4척 7촌 7푼 5리), 포백척으로 2.126척(2척 1촌 2분 6리)이었다.

내용 및 특징

임진왜란 이후 정부가 보관하던 세종대의 준수척이 모두 없어져서 1634년(인조 12) 갑술양전 때 새로 준수척을 제작하였다. 이때 제작된 준수척은 부적절한 표준척 근거를 사용한 탓으로 그 길이가 1촌이 길어져서 포백척 2.226척(2척 2촌 2분 6리)이었다. 새 준수척으로 양전된 후에 호남에서 세종대 이후로 사용되던 포백척 2.126척인 원래 준수척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하여 신구 준수척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지만 인조는 포백척 2.226척인 신 준수척을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의 신 준수척을 갑술준수척이라 하여 원래의 준수척과 구별하였다.

변천

1634년의 갑술양전 이후 1653년(효종 6) 9월에 호조에서 세종대의 전제상정소준수조획(田制詳定所遵守條劃)을 찾아 복간하였다. 이후에 시행된 양전은 이에 근거하여 포백척 2.126척인 원래의 준수척으로 양전되었다. 현종대에 시행된 1663년 경기의 계묘양전과 1669년 충청도 21읍의 기유양전이 그것이었다.

1720년 숙종대의 경자양전이 시행될 때에도 포백척 2.126척의 원래의 준수척이 제작되어 삼남에 지급되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포백척 2.226척인 갑술준수척이 다수 발견되어 정부에서 양전척 논쟁이 재현되었다. 결국 포백척 2.226척의 갑술준수척으로 양전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전제상정소준수조획(田制詳定所遵守條劃)』
  • 박흥수, 『도량형과 국악논총』, 박흥수박사화갑기념 논문집간행회, 1980.
  • 한국사연구회 토지대장연구반, 『조선후기 경자양전 연구』, 혜안, 2008.
  • 이영훈,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의 제정연도」, 『고문서연구』 9·10, 199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