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竹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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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싹 터서 땅 위로 솟은 연한 줄기.

개설

죽순은 왕실은 물론 민간에서도 즐겨 식용되는 식품이었다. 죽순은 조선시대 유서류 및 조리서에 보이는 죽순절임·죽순정과·죽순나물·죽순찜 등 다양한 일상음식의 재료로도 쓰였지만, 의례음식으로도 이용되었다. 죽순김치[筍菹]를 담가서 제수로 올리거나, 죽순이 햇것으로서 천신(薦新)되었다.

원산지 및 유통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죽순은 생죽순(生竹筍)과 말린 죽순[乾竹笋]의 형태로 진상되었다. 죽순은 경상도 경주부 영일현, 진주목 창원도호부, 전라도 전주부 김제군·정읍현·태인현, 나주목 영암군·영광군·함평현·무안현·고창현·장성현, 장흥도호부·순천도호부·보성군·진원현에서 진상하였고, 말린 죽순은 경상도 경주부 울산군·언양현, 전라도전주부 고부군, 장흥도호부에서 바치는 공물이었다.

생죽순은 주로 4~6월에 천신용으로 진상되었다. 『승정원일기』 1688년(숙종 14) 4월 29일의 기사를 포함해 여러 기사를 살펴보면, 죽순을 천신 시기에 맞춰 제때 진상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승정원일기』 1628년(인조 6) 5월 17일의 기록처럼 진상 과정에서 부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경우 봉진을 담당한 관리에게 죄를 묻기도 했다. 『승정원일기』 1648년(인조 26) 5월 13일의 기사에 따르면, 지방관이 생죽순 대신 소금을 묻힌 죽순을 진상하여 문제가 된 일이 있다. 『승정원일기』 1662년(현종 3) 5월 22일과 1666년(현종 7) 5월 19일 기사에서 보듯이, 사옹원(司饔院)에서도 생죽순 대신 소금에 절인 침죽순(沈竹筍)을 봉입받기도 했다.

연원 및 용도

조선초기부터 죽순은 봄에 나는 제철식품으로서 종묘에 천신되었다. 태종 때 달마다 시물(時物)을 종묘에 천신하도록 명했는데, 죽순은 보리·앵두·오이·살구와 함께 5월에 올려야 하는 식품이었다(『태종실록』 12년 8월 8일). 『세종실록』「오례」 종묘천신의에서도 죽순은 중하(中夏)인 5월에 두(豆)라는 제기(祭器)에 담아 올리는 신물(新物) 중 하나였다.

이렇게 천신에 쓰는 죽순은 생죽순을 기본으로 하되,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소금에 절인 죽순을 썼다. 평상시에 조리용으로는 말린 죽순을 많이 썼다. 조선시대에 1년 내내 죽순을 먹기 위해서는 죽순의 저장성을 높여야 했는데, 소금에 절여 두었다 쓸 때 물에 담가 짠맛을 빼서 쓰거나, 말려서 썼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따르면, 5월에 수확한 죽순을 껍질을 벗기고 쪼개어 소금에 절여 두었다가 소금물에 삶아 건져내 말리거나, 맹물에 삶아 건져내 말려 두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말린 죽순은 조리를 앞두고 쌀뜨물에 담가 두면 햇죽순처럼 맛이 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산림경제(山林經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