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문(曜金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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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서북쪽 담장에 있는 문.

개설

요금문(曜金門)은 창덕궁을 두르는 궁장의 서북쪽에 배치된 문이다. 금호문·경추문과 함께 창덕궁의 서쪽 출입을 관장하였다. 요금문의 북쪽, 후원을 두르는 담장에 조종문이 차례로 놓였다. 성종대에 액호가 없는 대궐문이 많아 왕의 명으로 서거정이 각 문들의 이름을 지었는데, 창덕궁 서장문의 이름을 요금문이라 하였다(『성종실록』 6년 8월 23일). 이때 본래 현판의 글씨는 신자건이 썼으나 창덕궁이 중건되던 때에 바뀐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및 용도

창덕궁의 서쪽 궁장에는 총 5개의 문이 설치되었는데, 남쪽부터 금호문·경추문·요금문·조종문·영승문의 순이다. 요금문은 궁궐 대내와 후원 사이에 있는 문이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고, 요금문 바로 앞 가까이에는 궁궐을 돌아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대보단이 들어서기 전까지 요금문 밖에 군영을 비롯한 중일각, 수문장직소, 수각 등 군사시설이 배치되었다. 요금문 안에는 얼음을 저장하는 빙고, 연산군 때에는 매를 기르는 응방이 들어서기도 했다.

요금문은 대내의 주방에서 물을 긷기 위해, 궁궐을 출입하는 여인들의 수레와 말이 궁궐로 들어올 때 개폐되었으며(『효종실록』 9년 10월 20일), 간택 처녀들이 궐내에 들어올 때, 궁인들이 출입할 때에도 요금문을 사용하였다.

변천 및 현황

요금문은 1404년(태종 4)에 창덕궁이 창건될 때 함께 조성되었으며, 성종 때 이름이 정해졌다. 창덕궁 서북쪽의 한적한 장소에 놓여있어 담장이 허물어지는 등의 수난으로 수보하는 일이 잦았다. 현재에도 문이 남아있어 요금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형태

요금문의 요금(曜金)은 ‘빛나는 금빛’이라는 뜻인데 ‘금’이 상징하는 것이 서쪽 또는 가을과 통하기에 요금문이라 이름하였던 것 같다.

「동궐도」에 의하면 요금문은 담장 사이에 있는 솟을문으로 맞배지붕을 이었으며, 용마루 끝에 취두를 장식한 사주문(四柱門)의 구조이다. 문짝이 없이 붉은 장대에 X 표시가 있는데 어떤 용도와 의미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문헌에서 요금문을 개폐하였다는 기사가 자주 나오고 있어 문짝의 존재 여부는 확실하며, 문이 열린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문짝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고, 외부로의 출입이 잦은 중요한 문이기에 X 표시된 구조물을 문에 대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현존하는 요금문은 주칠을 한 2짝 판장문이 달려있고, 그 위에 홍살을 올려놓았다.

관련사건 및 일화

숙종대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여러 사건으로 인해 장희빈은 왕비 자리를 다시 인현왕후에게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숙종이 급한 마음에 왕비의 자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인현왕후를 궁궐로 들인 까닭에 왕후는 정문이 아닌 그녀가 폐비되어 궁궐을 나갈 때 사용했던 요금문으로 다시 들어오는 굴욕을 맛보아야 했다. 마침내 인현왕후를 요금문 안쪽 경복당에 머물게 하고 장희빈을 대조전에서 끌어내리는 사건이 일어났다(『숙종실록』 20년 4월 12일). 때문에 요금문과 경복당은 성모라 지칭된 인현왕후의 기념비적인 장소로 회자되곤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궁궐지(宮闕志)』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한경지략(漢京識略)』
  • 『홍재전서(弘齋全書)』
  • 문화재청 편,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수류산방,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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