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화(艾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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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에 쑥으로 만든 꽃.

개설

애호(艾虎)라 불리기도 한다. 단오에 쓰이는 절물(節物)로, 유사한 의미를 지닌 물건으로 애용(艾俑)이 있다. 조정에서는 단오에 쑥이나 짚으로 만든 애화를 각신(閣臣)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휴대하거나 집 입구에 걸어 두었다. 궁중에서 애화를 만든 것은 벽사(闢邪)와 장수(長命)를 기원하고 충재(蟲災)를 막기 위해서였다.

연원 및 변천

애화는 빗접[梳函]·짚신[靸鞋]·우산(雨傘)·부채[節扇]와 함께 단오절에 왕에게 진상한 절물(節物) 중 하나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인용된 『세시잡기(歲時雜記)』에 의하면, 애호를 만들어 머리에 꽂았던 것이 애화의 연원이라고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애화가 애용(艾俑)과 장명루(長命縷)의 뜻을 겸한 것이라고 하였다. 애용은 쑥 인형 혹은 쑥 호랑이이며 장명루는 오색의 실로 만든 절물로 초나라에서는 단오에 팔에다 걸고 다녔다고 한다. 애용은 벽사의 의미를, 장명루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지닌 데 비해, 애화는 이 두 의미를 모두 가진 것으로 보인다. 애화는 호조(戶曹)에서 비용을 내려주면 공조(工曹)에서 만들어 단오가 되기 전에 왕에게 진상하였다. 왕은 진상 받은 애화를 다시 대소빈전(大小殯殿)과 각전(各殿)을 비롯하여 각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애화는 몸에 지니거나 머리에 비녀처럼 꽂기도 하였다.

애화는 수화(首花)와 함께 단오 외에 정월의 인일(人日)에 공조에서 만들어 바쳤다. 그러나 나라에 국휼(國恤)이나 사친(私親)의 복(服)을 입는 등 상사가 있을 때에는 이것의 진상을 일시적으로 금하였다(『영조실록』 14년 12월 29일).

형태

애화는 짚이나 쑥을 사용하여 비단 조각을 만든 꽃을 묶는데 그 모양이 갈대 이삭과 유사하였다. 『세시잡기』에 의하면, 애호는 쑥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들거나 혹은 비단으로 작은 호랑이를 만들어 쑥잎을 붙여 만들었다고 한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단오에 사람 형상을 쑥으로 만들어 문 위에 달아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열양세시기』에 나오는 애화는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길이가 7~8치(21~24㎝), 넓이가 3푼(0.9㎝) 정도로 가운데부터 아래로 갈수록 점점 줄어들어 맨 끝은 뾰족한 형태이다. 그 가운데의 윗부분에는 창포잎을 붙이고 오색실로 감았다. 이렇게 생긴 애화를 비녀로 삼아 머리에 꽂았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민간에서는 애화를 몸에 지니거나 머리에 꽂으면 액을 막아 주는 벽사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믿었다. 또한 대문 앞에 이것을 매달아 집안으로 액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는 쑥이 갖는 고유의 성질 중 하나인 정화력과 관련이 있으며, 실제로도 쑥은 여러 해충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세시잡기(歲時雜記)』
  •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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