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피장(熟皮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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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을 삶는 장인 혹은 가죽의 털을 뽑고 무두질하는 장인.

개설

가죽의 털과 기름을 뽑아 생피(生皮)를 부드럽게 다루는 일로 업을 삼는 장인이다. 숙피(熟皮)는 가죽을 이긴다는 뜻이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 가죽을 다루는 장색으로 생피장(生皮匠)과 숙피장(熟皮匠)이 있다. 털만 뽑고 무두질은 하지 않는 생피장과 털 뽑기와 무두질을 하여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숙피장은 경공장 본조에 10명, 상의원(尙衣院)에 8명이 소속되었고, 제용감(濟用監)에도 숙피장이 2명 있었다. 가죽을 삶는 데는 화약을 만드는 기본 재료인 염초(焰硝)가 사용되었다(『효종실록』 8년 2월 30일). 이것은 1522년에 남부(南部) 훈도방(薰陶坊)에 사는 숙피장 지용(池龍)이 녹반(綠礬)을 진상한다는 기록에서도 가죽에 사용되는 매염제(媒染制) 사용이 확인된다(『중종실록』 17년 10월 7일).

외공장(外工匠)에는 가죽을 다루는 세부 공정에 따라 장색이 분류되지 않고 다만 피장으로 소속되어 있다. 그 인원은 경기 5명, 충청도에 56명, 경상도에 61명, 전라도에 61명, 강원도에 31명, 황해도에 28명, 영안도에 21명, 평안도에 28명 등으로 지역에 따라 소속되어 있다.

생피장과 숙피장은 가죽을 일차적으로 처리하는 직무를 담당하였으며, 가죽의 종류에 따른 손질 및 쓰임새에 따라 과피장(裹皮匠)·사피장(斜皮匠)·주피장(周皮匠)·숙피장·생피장·전피장(猠皮匠)·피장(皮匠) 등으로 세부 장색을 나눈다.

『조선왕조실록』에 대궐에 숙피장·모의장(毛衣匠)·화장(靴匠)을 모두 불러들이고 침선비와 합사비도 들여보내 직무를 보게 한 기록이 있다(『연산군일기』 10년 1월 18일).

변천

고려시대의 공장은 세습제로서 중앙의 각 관아에 갖가지 명칭으로 소속되어 있었으며 소속 기관에 따라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가죽과 관련된 일을 하는 장색으로는 금속 세공 부문 제작을 담당했던 곳인 장야서(掌冶署)에 피대장(皮帶匠)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공장이 관장과 사장으로 나누어지는데, 관에 소속된 관장은 다시 경공장(京工匠)과 외공장으로 구별되어 근무하였다. 서울의 여러 중앙 관서의 기술자인 장인은 그 관계 서류를 작성하여 공조와 소속 관서에 비치하며, 가장 긴요한 장인이 결원이 있을 때에는 군인·보솔(保率)·관속(官屬)·공천(公賤)을 막론하고 합당한 사람으로 차출하여 정한다.

경공장 본조에 10명, 상의원에 8명의 숙피장이 소속되었고, 제용감에도 숙피장 2명이 소속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_』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