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法酒)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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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법주 |
한글표제 | 법주 |
한자표제 | 法酒 |
관련어 | 청주(淸酒), 현주(玄酒)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재료 | 기장[黍], 누룩[麴], 물[水], 보리[麥] |
계절 | 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법주(法酒) |
왕실에서 제향 때 사용하는 술, 혹은 왕실에서 정해진 만드는 법에 따라 빚은 술.
개설
법주(法酒)는 2가지의 용례로 쓰였다. 첫째는 왕실의 제사 때 현주(玄酒)와 함께 올리는 술을 가리키며, 둘째는 왕실에서 정해진 만드는 법에 따라 빚은 술로 주로 궁중에서 담근 술을 가리킨다. 궁중의 술은 사온서(司醞署)에서 빚었다. 조선시대 학자들의 시문에서는 왕이 내려준 술을 법주라고 불렀다. 이 역시 궁중에서 빚은 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법주를 만드는 법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는 없다.
만드는 법
법주 만드는 법이 나오는 문헌으로는 중국 북위의 가사협(賈思勰)이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과 1924년에 이용기(李用基)가 펴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 있다.
『제민요술』의 법주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음력 3월 3일, 해가 뜨기 전에 물 3말 3되를 길어 놓고, 말린 누룩가루 3말 3되를 준비하고, 기장쌀[黍米] 3말 3되를 찐다. 밥이 식으면 독에 넣고, 누룩가루와 골고루 버무린다. 3월 6일에 또 쌀 6말을 쪄서 같은 방법으로 독에 넣는다. 3월 9일에 다시 쌀 9말을 쪄서 같은 방법으로 독에 넣는다. 이후 때를 보아 약간의 쌀을 더 쪄서, 한 번에 술독이 가득 찰 때까지 채운다. 술이 다 익으면 술독에서 떠낸다. 그다음에 떠낸 만큼의 양을 다시 같은 방법으로 술독에 채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법주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볶은 보리 누룩가루 한 섬을 볕에 쬐어 말리고 끓는 물 한 섬에 기장쌀 한 섬을 합하여 익게 하고 2월 2일에 물을 길어다가 먼저 끓여 식으면 처음 우려 푸고 열흘 만에 한 번 더 푸되 개와 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 후에 여드레나 엿새 만에 한 번 우려 푸되 썩 맛있는 날에 더 푸고, 2월 중절(中節: 15일)에 다시 붓는 것이 좋은데 항상 미리 끓는 물을 두었다가 다시 붓기를 마칠 때 5되로 하고 쌀의 다소는 볶은 누룩을 맞추어 정한다.”
연원 및 용도
법주에 대한 기록은 『고려도경(高麗圖經)』, 『고려사(高麗史)』 등에도 보인다. 『고려도경』에서는 “나라에는 찹쌀이 없다. 멥쌀을 누룩에 섞어서 술을 만든다. 술의 빛깔이 짙고 맛이 독해 쉽게 취하지만 빨리 깬다. 왕이 마시는 술을 양온(良醞)이라고 부른다. 궁궐의 좌고(左庫)에는 청주(淸酒)와 법주 2종류의 술이 있다. 옹기로 만든 술독에 담가 황견(黃絹)으로 봉해 둔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고려시대부터 왕실에서는 청주와 법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법주는 정해진 배합 방법대로 담근 술이다. 주로 제사에 사용하거나 왕이 신하에게 하사할 때 사용하였다. 『고려도경』에서는 멥쌀로 담근다고 했지만, 기장쌀로 담근 법주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주의 주재료는 기장쌀이며 술밥을 3차례 정도 더하는 방법으로 만드는 술이다. 다만 이 법주를 왕실 제사에서 사용했는지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깨끗한 물로만 사용한 현주에 대응하여 술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도경(高麗圖經)』
- 『월사집(月沙集)』
- 『제민요술(齊民要術)』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