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대반(白磁靑花大盤)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산화코발트인 회회청으로 문양을 그린 큰 접시 형태의 백자반.

개설

백자청화대반(白磁靑花大盤)은 중국 명(明)나라 황제인 선덕제(宣德帝)가 조선 왕 세종에게 보낸 하사품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은 개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에 명나라에 사절을 보내 예물을 바치고 이성계(李成桂)의 즉위를 알림으로써 사대(事大)의 예를 행하였다. 명나라는 1402년 영락제(永樂帝) 즉위 후에 조선 왕을 책봉하는 고명(誥命)과 인신(印信)을 보내왔다. 이후 조선에는 명나라 황제의 하사품과 사신의 진상품으로 다양한 종류의 중국 자기가 유입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명대 자기의 유입은 15세기 초 세종 연간에 집중되었다. 특히 명나라 선덕제는 세종에게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자기를 하사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칙서에 기록되었다.

연원 및 변천

1428년(세종 10)에 조선은 명나라에 황후 책봉을 축하하는 진하사(進賀使)를 파견하였고(『세종실록』 10년 7월 3일), 같은 달 19일에 명나라의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였다. 이때 선덕제가 사신을 통해 세종에게 백소자기(白素磁器) 10탁(卓), 백자청화대반 5개, 소반(小盤) 5개를 보냈다(『세종실록』 10년 7월 19일). 당시 칙서는 명나라 예부(禮部)에서 작성하였는데 백자청화대반은 명나라 황제가 여러 주변국의 왕에게 외교 관례로 하사한 것으로 강서성 경덕진요(景德鎭窯) 관요 양식의 청화백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조선에서 명나라에 보낸 사은표전(謝恩表箋)에는 앞서 선덕제가 하사한 백자청화대반을 ‘백자청화만반(白磁靑花滿盤)’으로 표기하였다(『세종실록』 10년 7월 25일).

형태

반(盤)은 15세기 당시 명나라와 조선에서 모두 사용한 용어로 명나라로부터 유입된 백자의 기종(器種)인 종(鍾)과 병(甁), 대종(大鍾), 대접(大楪) 등과 구분된다(『세종실록』 11년 5월 2일), (『세종실록』 11년 6월 10일), (『세종실록』 11년 11월 2일). 반의 구체적인 형태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오례」 노부(鹵簿)에서 은(銀)으로 만들고 은반(銀盤)과 같으면서도 속이 깊은 은관자(銀灌子)에 대한 설명과 그림을 참고할 수 있다. 즉 은반은 속이 깊지 않고 그 테두리가 넓고 수평으로 꺾여 밖으로 벌어진 형태이다.

또 세종대에 왕대비인 태종 비(妃)의 상장(喪葬) 중 세 차례의 재(齋)에 떡·과일·유과 등을 담는 데 사용된 반(『세종실록』 2년 7월 19일), (『세종실록』 4년 5월 10일), (『세종실록』 17년 11월 17일) 등을 비롯하여 왕실·종친·대신의 예장(禮葬)에서 시체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얼음을 담았던 빙반(氷盤)의 사용 예로 보아 큰 접시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방병선,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 이현정, 「15~16세기 朝鮮 白磁에 보이는 明代 磁器의 影響」, 『美術史學硏究』 제270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