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식지희(規式之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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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국가적인 행사나 외국 사신 등을 영접할 때 행하던 기예적인 놀이를 통틀어 일컫는 말.

개설

규식지희(規式之戲)는 기예적인 놀이를 통칭하는 말로, 대사 중심의 연극적인 놀이를 가리키는 소학지희(笑謔之戲)와 구별된다. 농령(弄鈴)·농환(弄丸)으로 불린 방울 놀이, 답삭(踏索)·보삭(步索)으로 불린 줄타기, 장간희(長竿戲)로 표현된 솟대 놀이, 근두(筋斗)라 불린 땅재주, 토화(吐火)로 불린 불놀이와, 어룡지희(魚龍之戱), 무동(舞童)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오늘날에는 사당패가 이 중 일부를 전승하고 있으며, 특히 무동은 풍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행된 규식지희에는 줄타기, 땅재주, 솟대 놀이, 방울 놀이, 불놀이 등이 있다. 고려시대 이후 국가적인 행사 혹은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행한 산대잡극(山臺雜劇)에서 주로 연희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기예적인 놀이가 빼놓을 수 없는 규식(規式)이 되어 그 규모 또한 점차 성대해졌다. 『문종실록』에는 1450년(문종 즉위)에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줄타기에 해당하는 주질(注叱), 방울 놀이인 농령, 땅재주에 해당하는 근두 등과 같은 규식이 있는 유희는 예전대로 하도록 명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문종실록』 즉위년 6월 10일).

변천

중국의 역사서인 『북사(北史)』「백제전(百濟傳)」에는, 백제에서는 투호(投壺), 저포(樗蒲), 농주(弄珠), 악삭(握槊) 등의 잡희(雜戱)를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수록된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鄕樂雜詠)」에도 잡희에 관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고구려 장천(長川) 1호분, 강서(江西) 수산리(修山里) 고분(古墳), 팔청리(八淸里) 고분, 강서 약수리(藥水里) 벽화고분(壁畵古墳) 등의 벽화를 살펴보면 방울 받기, 곤봉과 방울을 엇바꾸어 받기 등이 보여 우리나라 잡희의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매년 연말에 시행하던 나례(儺禮)와, 왕을 위한 연회에서 기예적인 놀이를 행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기예적인 놀이는 문종 연간에 규식지희로 정착되어, 재담으로 펼쳐지는 소학지희와 구분되었다. 규식지희는 광대와 서인층이 주로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 『북사(北史)』
  • 이두현, 『한국 가면극』, 문화재관리국, 1969.
  • 장한기, 『한국연극사』,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6.
  • 안상복, 「소학지희의 개념과 역사적 전개」, 『공연문화연구』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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