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행보(國王行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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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책봉(冊封)과 제수(除授) 관련 국왕 문서에 사용한 어보.

개설

세종대에는 국왕 문서에 사용할 어보(御寶)로 ‘신보(信寶)’와 ‘행보(行寶)’를 제작하여, 인문(印文)을 각각 ‘국왕신보(國王信寶)’·‘국왕행보(國王行寶)’라 하였다. 이 두 어보로부터 조선시대 국왕 문서용 어보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신보와 행보는 고려시대로부터 이어진 어보의 문구이다. 또한 진(秦)의 승여육새(乘輿六璽)를 비롯하여 당(唐) 8새, 송(宋) 14새, 명(明) 24새에 모두 ‘황제행새(皇帝行璽)’, ‘황제신새(皇帝信璽)’, ‘천자행새(天子行璽)’, ‘천자신새(天子信璽)’의 명칭으로 신새와 행새가 존재한다. 따라서 조선의 ‘국왕신보’와 ‘국왕행보’는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국왕행보의 연원 및 변천은 '국왕신보'를 참조 바람.

형태

국왕행보는 무게 164냥의 금제이며, 국새인 조선국왕지인과 같은 사방 10㎝로 제작하였다. 서체는 구첩전(九疊篆)으로 매 글자마다 9획을 정확히 지켰다. 현존 고문서 가운데 국왕행보를 안보(安寶)한 가장 이른 사례로는 이 인장이 만들어진 해인 1433년(세종 15) 이징석(李澄石)에게 내린 왕지(王旨)가 있다. 「이징석왕지」는 총 5행에 걸쳐 해서를 중심으로 쓰였고, 연호와 날짜 사이에 어보를 안보하였다. 이씨 문중이 보관하고 있는 「이징석왕지」를 포함한 문서들은 왕지, 유서, 사제문 사패교지 등 조선전기의 각종 문서를 고루 갖추고 있어 당시 고문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郭福祥, 『明淸帝后寶璽』, 古宮博物院, 1994.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