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휘전(孝徽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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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 있던 철종의 비 철인왕후(哲仁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신주를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철인왕후처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효휘전은 철종의 비 철인왕후의 혼전이다. 철인왕후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김문근(金汶根)의 딸이다. 1878년(고종 15) 철인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효휘(孝徽)’로 정하고(『고종실록』 15년 5월 17일), 5개월 뒤 예릉(睿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의 철종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효휘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878년 5월 12일 철인왕후가 창경궁 양화당(養和堂)에서 승하하자 환경전(歡慶殿)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5개월 뒤인 9월에 철종의 무덤인 예릉의 동원(同原)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고종실록』 15년 9월 18일). 이때 창경궁에 조성한 혼전명이 효휘전이다.

효휘전은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文政殿)에 설치하였다(『고종실록』 15년 5월 12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창경궁 안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혼전이 존재하는 동안 효휘전은 철인왕후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효휘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일반적으로 혼전에서 거행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았다. 반우한 날 초우제(初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상제(祥祭), 담제(禫祭)를 모두 효휘전에서 거행하였다.

1880년(고종 17) 7월 5일 부묘 하루 전, 고종이 효휘전에 나아가 고동가제(告動駕祭)를 행하였다. 다음 날인 7월 6일에 철인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고 부묘대제(祔廟大祭)를 지냈다. 따라서 효휘전은 철인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878년 9월 18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880년 7월 5일까지 창경궁의 문정전에 설치되었다.

변천

효휘전이 있었던 창경궁의 문정전은 그 이전부터 왕이나 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어 온 전각이다.

참고문헌

  • 『철인왕후국장도감의궤(哲仁王后國葬都監儀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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