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극전(皇極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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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중심에 위치한 외조의 3대 전각 중 하나.

개설

북경시 자금성 안에 위치하며 외조(外朝)의 3대 전각 중에 가장 큰 궁전이다. 외조는 궁궐 정문과 정전 출입문 사이의 공간으로 황제가 주로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1417년 건설되어 처음에는 봉천전(奉天殿)이라고 하였으나 1562년 황극전(皇極殿)으로 개칭하였다. 1645년(순치 2) 태화전(太和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금란전(金鑾殿)이라고도 하였다. 명·청의 황제는 즉위·탄신·춘절·동지 등의 절일의 축하행사나 출정식 등의 중대한 활동을 모두 이곳에서 거행하였다. 특히 청대 황극전은 영수궁(寧壽宮) 정전을 가리키며 ‘영수궁 황극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치 및 용도

자금성 안 남쪽 태화문 북쪽에 있으며 북쪽으로 중화전(中和殿)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 각각 문이 있다. 황제들의 즉위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고 매년 원단(元旦)·동지(冬至)·만수의 3대 절일(節日)이나 국가의 중대 축하행사의 경우 황제가 이곳에 임하여 해당 의례를 거행하였다. 대조회, 연향, 군대의 출사 혹은 백관들의 임명과 사은의 활동도 대개 이 곳에서 거행하였다. 1644년 청 순치제의 즉위 조회가 이곳에서 있었다(『인조실록』 22년 12월 4일).

건륭 연간(1736~1795)부터 황극전은 영수궁 정전을 가리키게 되었다. 건륭제는 영수궁에 황극전의 편액을 걸고 태상황의 궁전으로 사용한 것이다. 본래 영수궁은 주위의 건축물과 함께 영수전궁(寧壽全宮)으로 일컬었으며 태후·태비를 봉양하는 곳이었다. 뒤에 태상황의 궁전이 되었고 천수연이 이곳에서 베풀어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796년 건륭제의 천수연에 70세 이상의 관원·신사(紳士)·기서(耆庶)들을 이곳에 불러 모은 일을 기록하였다(『정조실록』 19년 11월 28일). 영수궁 황극전은 북경 고궁 내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변천 및 현황

황극전이 처음 건설된 것은 1417년으로 본래 봉천전(奉天殿)이라 하였다. 영락 연간(1403~1424) 화재가 발생하여 명대인 1441년(정통 6) 중건되었다. 1557년에도 화재를 입어 1562년(가정 41) 중건되어 황극전으로 개명되었다. 이후 1597년에 다시 화재를 입어 1626년 준공되었다. 청나라 시기인 1645년 황극전을 태화전으로 개칭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679년 다시 화재를 입어 1694년 중건된 것이다.

한편 영수궁 황극전의 전신인 영수궁은 1689년에 건설되었다. 이후 건륭제가 조정에 임한 지 만 60년에 정사를 그만두고 물러날 장소를 물색하였을 때 마침내 영수전궁을 태상황(太上皇)의 궁전으로 삼고 보수를 진행하여 황극전이라고 하였다.

형태

현존 건축물은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과 함께 높이 8.13m의 3층의 흰 대리석의 기단 위에 있다. 기단의 네 주변은 돌난간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운룡(雲龍)·운봉(雲鳳)의 망주가 1,488개로 이루어져 있다. 전후로 각 3개의 돌계단이 있는데 중간의 돌계단은 황제가 다니는 어로로서 거대한 석질에 반룡(蟠龍)·파도·구름을 조각하여 조성하였다. 대전의 정면은 11칸, 측면 5칸으로 황유리기와에 겹처마에 5개 용마루를 얹은 무전정(廡殿頂)의 형식이다. 자금성 최대 규모로 높이는 35.05m 넓이는 63m에 달한다. 전각 안에 금칠한 기둥은 반룡이 조각되어 있고 전 안에는 용을 조각하여 금칠한 보좌가 있어 매우 화려하고 성대하다.

영수궁 황극전은 영수문 안으로 긴 계단이 황극전으로 연결된다. 황극전은 정면 9칸 측면 5칸으로 황색유리기와를 얹은 겹처마에 무전정의 양식이다. 전면의 좌우 양측은 복도이며 정면의 좌우로 전문(殿門)이 있고 나머지 칸들은 벽이다. 궁전 안에는 4개의 금칠한 반룡이 조각되어 있으며 안쪽으로 보좌가 설치되어 있다. 품급은 태화전 다음이다.

참고문헌

  • 戴均良 등 주편, 『中國古今地名大詞典』, 上海辭書出版社, 2010.
  • 鄭天挺 등 주편, 『中國歷史大辭典』, 上海辭書出版社, 2000.
  • 林姝, 「皇極殿考略」, 『故宮學刊』, 故宮博物院,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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