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필주(洪弼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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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74년(영조 50)~1801년(순조 1) = 28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천주교도로,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필립보. 어릴 때의 이름은 홍문갑(洪文甲)이며,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홍지영(洪芝榮)이고, 새어머니는 강완숙(姜完淑)이다.

정조~순조 시대 활동

충청도 덕산의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홍필주(洪弼周)는 1790년(정조 14)경 이존창(李存昌)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후 그는 새어머니이자 그보다 더 먼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강완숙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부인과 아들이 천주교 신앙을 믿는 것을 싫어하여 집에서는 온전한 교리 생활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들 모자는 1791년(정조 15) 전라도 진산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제사를 폐하여 문제가 된 <신해박해(辛亥迫害)>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전개하였다. 홍필주는 1795년(정조 19)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자신의 집에 모신 후에 본인은 신부의 활동을 보좌하는 복사가 되어 미사와 지방 순회 활동을 도왔다.[『사학징의(邪學懲義)』],[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 당시 그의 집은 조선 천주교회의 중심지이자 신부의 주된 거처지로, 성당은 물론 과부와 동정녀들의 공동체로 이용되었다.

이 같은 활동으로 홍필주와 어머니 강완숙은 천주교회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므로,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일찍부터 체포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결국 홍필주는 박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 강완숙과 또 다른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 압송되었다. 관원들은 홍필주의 신문을 통해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계속되는 형벌과 문초에 홍필주는 마음이 약해질 뻔 하였으나 어머니 강완숙의 권면으로 마음을 다잡고 배교하지 않았다. 이후 강완숙이 먼저 사형을 당하고 그는 오랫동안 감옥에서 고통을 받다가 그해 7월 13일 사형선고를 받고는 8월 27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사망하였다.(『순조실록(純祖實錄)』 1년 7월 13일),[『사학징의』]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사학징의(邪學懲義)』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하느님의 종 125위 약전』, 2009.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12,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