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한자의 중국음을 한글로 정확하기 나타내기 위하여 만든 책.

개설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은 1455년(단종 3)에 간행된 금속활자본 책이다. 세종(世宗)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한글에서의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1447년(세종 29)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을 완성했다. 이어 세종은 한자의 중국음을 정확히 표시하기 위해 명(明)나라에서 엮은 한자의 운(韻)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洪武正韻)』의 음을 한글로 나타낼 것을 명하였고, 1455년 『홍무정운역훈』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한자 밑에 한글로 정음과 속음을 달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홍무정운역훈』의 편찬 목적은, 첫째 정확한 중국 발음을 쉽게 습득하고, 둘째 속음의 현실성을 불가부지한 것으로 보고 이를 표시하였으며, 셋째 『홍무정운』을 중국표준음으로 정하고자 한 것이며, 넷째 세종의 어문정책 전반에 관한 소망성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참여한 인물은 감장자(監掌者)로 당시 수양대군(首陽大君)이던 세조(世祖)와 계양군(桂陽君)이고, 편찬자는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조변안(曺變安)·김증(金曾)·손수산(孫壽山) 등이며, 수교자(讎校者)는 노삼(魯參)·권인(權引)·임원준(任元濬) 등이다.(『성종실록』 6년 6월 21일) 신숙주의 서문 중간에 ‘범등십여고 신근반부 경팔재지구(凡謄十餘藁 辛勤反復 竟八載之久)’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아 1448년(세종 30)경에 착수된 것으로 보인다. 간행 시기는 서문에 ‘경태육년중춘기망(景泰六年仲春旣望)’이라 하여 1455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간행되었다고 하겠다.

서지 사항

총 16권 8책으로 되어 있으며, 금속활자본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화산문고,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홍무정운역훈』은 세조 때에 중국 자음 학습용으로 권장되기도 했으나, 후대에는 별로 널리 이용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1책인 권1과 권2는 없어지고 권3에서 16까지 14권 7책만이 고려대학교 화산문고에 전하고, 그 밖에 영본이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과 한자, 큰 글자는 목활자로, 작은 글자는 갑인자(甲寅字)로 찍었다.

구성/내용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는 성삼문, 조변안, 김증, 손수산 등과 함께 명나라의 표준 한자음 사전이었던 『홍무정운』에 반절로 기술되어 있는 한자음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홍무정운역훈』을 펴냈다.(『성종실록』 6년 6월 21일) 그들은 이 책의 반절을 정리하여 31자모를 찾아내어 이것을 기반으로 중국 한자음을 언문으로 표기하였다.

신숙주의 「홍무정운역훈서(洪武正韻譯訓序)」에는 이 책의 구성이 잘 드러나는데, 중국 사신들로부터 한자음을 실제로 듣고 한자의 정음과 속음을 구분하여 언문으로 표기하였다고 전한다. 또 『홍무정운』의 성모 순서가 맞지 않았지만 그대로 두고, 운을 표시하는 글자들의 위에 성모를 나타내는 자모를 분류하여 기입하고, 반절을 대신하여 ‘훈민정음’으로 음을 표시하였음을 분명히 하였다. 만일에 이해하기 어려운 음이 있으면 간단히 주를 달고 그 예를 보였으며, 세종이 ‘사성통고’라고 책이름을 지어 준 것을 따로 첫머리에 붙이고, 다시 범례를 실어 기준이 되도록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원래 『홍무정운』은 1375년(홍무 7년)에 명나라 때의 악소봉(樂韶鳳) · 송염(宋濂) 등이 지은 관찬(官撰) 운서다. 이 책의 서문에서는 중원아음(中原雅音)과 모황(毛晃) 부자(父子)의 『증수호주예부운략(增修互註禮部韻略)』을 바탕으로 해서 편찬했음을 말하고 있는데, 반절(反切)은 『증수호주예부운략』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운(韻)의 분류 배합은 『중원음운(中原音韻)』의 방식을 모방하고 있다. 곧 편찬자가 대부분 남방인이어서 강남공통어((江南共通語)인 오음계(五音系)인데다가, 전통적인 운서를 따라서 독서음(讀書音)의 영향이 많고, 또 북방음인 『중원음운』도 따른 절충식 운서다.

평(平) · 상(上) · 거(去)성은 각각 22운, 입(入)성은 10운, 계 76운인데, 재래의 운서가 여러 개 운을 합해서 하나의 운으로 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의 운을 여러 개로 나눈 뒤, 이들을 다시 새롭게 묶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중원음운』과 크게 다른 점은, 성조(聲調)에 입성자를 독립시켜 ‘-p, -t, -k’ 운미(韻尾)를 보존시키고 있는 것과, 평성을 음양(陰陽)으로 나누지 않은 점, 성모(聲母)를 31로 하여 유성 폐쇄음 · 유성 파찰음(破擦音) · 유성 마찰음을 보존하고 있는 점, 즉 현대 오어(吳語)와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데 있다. 이와 같이 북방 공통어는 남방음을 절충하여, 그 음계(音系)는 모순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세종은 명(明) 태조(太祖)의 칙정(勅定) 운서라는 점에 큰 영향을 받아 『홍무정운역훈』을 만들었다.

『홍무정운역훈』에서는 『홍무정운(洪武正韻)』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반절과 표제자를 뜻풀이한 내용도 그대로 인용하였다. 다만 표제자 앞에 31성모의 자모를 제시한 다음 표제자의 음을 언문으로 표기하여 제시하였다. 또 간혹 표제자 아래의 반절 다음에 당시의 표준 한자음인 중국 남방 지역의 발음과는 다르게 발음되는 중국 북방 지역의 발음을 속음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같은 음으로 발음되는 한자들을 나열하였다.

또한 『홍무정운역훈』에는 대표자 2,200자와 동운자 14,546자 모두 16,766개 표제자가 수록되어 있다. 중국 한자음을 언문으로 표기한 다음 성조를 방점으로 표시하고, 또 『홍무정운』의 반절을 그대로 인용한 이 책은 그 분량이 너무 많았으므로 『홍무정운역훈』을 간략하게 줄인 운서가 등장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사성통고(四聲通攷)』(1이다. 『사성통고』는 『홍무정운역훈』에 수록된 한자들을 모아 먼저 운별로 분류하고, 같은 운에 속하는 한자들은 31개 자모순으로 배열하였다. 또 같은 자모에 속하는 한자들은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의 순서로 배열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처음의 목적과는 달리 표준운서로서의 가치보다는 오히려 자료로서 큰 가치를 가진다. 즉 한자음의 전통적 표시방법은 반절이나 운도(韻圖) 등에 의지하는데, 이들은 한글표기의 정확성에 미치지 못하므로, 이 책의 한글표기는 아주 훌륭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박병채, 『홍무정운역훈』,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4.
  • 박종국, 『한국어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 정연찬, 「홍무정운역훈」, 『한국민족문화대사전』, 정신문화연구원, 1991.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