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위(笏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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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겁설관(怯薛官) 중 하나로 왕의 호위 업무를 담당하던 관원.

개설

겁설(怯薛)이란 은혜, 은총, 당번이란 뜻을 지닌 몽골어 케식(kesig)의 한어 표기이다. 홀위(笏衛)는 몽골어 호르치([忽赤], qorči)와 같은 의미로, 케식 호위군 중 대표적인 집단이다. 호르(qor)라는 것은 몽골어로 화살을 뜻하는데 호르치는 활을 가진 사람 즉 궁수라는 뜻이다.

고려후기 겁설관으로 홀치[忽赤], 우달적(迂達赤), 속고치[速古赤], 조라치[詔羅赤], 팔가치[八加赤] 등이 설치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궁궐의 숙위, 왕의 의복, 여행 등에 관한 업무 및 각종 잡무를 수행하였다. 홀치가 곧 홀위인데, 홀적(忽赤), 홀지(忽只) 등으로도 불린다.

담당 직무

몽골제국에는 케식이란 호위군이 있었는데 창설 초기에는 모두 550명이었다가 점차 수가 늘어나면서 몽골 군대의 축을 이루게 되었다. 쿠빌라이 때에 와서 12,000명에 달하였다. 케식은 시위인 투르가우드(turqa’ud), 숙위인 헵테울 (kebte’ul), 궁수인 호르치(qorči) 등 세 부대로 구성되었다. 호르치는 원래 화살통을 담당하면서 야간 호위병에게 나눠 주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변천

1274년 충렬왕이 원나라에서 머무를 때, 원에 볼모로 가있던 벼슬아치들의 자제를 불러 모아 홀치를 조직하고 숙위의 임무를 부여하면서 고려에 처음으로 홀치가 생겼다. 고려에는 홀치를 관리하는 홀치청이 있었는데 이는 왕 측근의 친위병 역할을 하면서 죄인 체포, 시가 순찰, 과거 시험장 감시 등의 일을 맡았다.

조선초기에 폐지했다가 간혹 임시로 설치하기도 했던 듯하다(『세종실록』 1년 2월 24일). 『성종실록』에서 홀위가 확인되는데 “홀위나 수문장을 정하여야 할 자는 일정한 수(數)가 있기 때문에 부득불 그렇게 한 것이다.”는 기록이 있다(『성종실록』 16년 윤4월 25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원조비사(元朝秘史)』
  • 최기호, 『최기호 교수와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 문화여행』, 박문사, 2009.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 몽골과학아카데미 어문학연구소 편, 『몽골어 대사전』, 2008.
  • 白鳥庫吉, 「高麗史に見えたる蒙古語の解釋」, 『東洋學報』 18-2, 1929.
  • Paul Pelliot, “Les mots mongols dans le Korye sa”, Journal Asiatique, 217-2,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