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리(胡打里)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함경남도 단천도호부에 속한 진보.

개설

호타리보는 관방시설로, 경종대에 단천(端川)의 오을족보(吾乙足堡)를 호타리(胡打里)로 옮겨 설치하였다. 영조대에 혁파되었으며, 호타리보는 이동보(梨洞堡)에 합쳐졌다.

위치 및 용도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호타리보는 단천군의 동쪽 15리(약 5.9㎞)에 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북쪽으로 길주목의 거리동봉수(巨里洞烽燧)의 신호를 받아 남쪽으로 오라퇴봉수(吾羅退烽燧)에 신호를 전한다. 또 호타리보는 성진(城津)과 표리(表裏)가 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변천 및 현황

1723년(경종 3) 4월 오을족보(吾乙足堡)를 호타리로 옮겼다. 본래 오을족보는 단천(端川)에 있었으며 번호(藩胡)들이 다니던 요충지였다. 하지만 번호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또한 오을족보의 지세는 매우 험하고 땅도 척박하여 사람들이 생활하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반면 호타리는 성진(城津)의 남쪽에 있으면서, 땅이 기름지고 바다와 가까웠다. 성진과의 거리는 30리(약 11.8㎞)였지만 중간에 고개가 12개가 있고 곁에 지형이 험한 곳이 많아서 매복하기에도 적당한 곳이었다. 그래서 오을족보를 호타리로 이설하게 되었다(『경종실록』 3년 4월 13일). 『여지도서』에 따르면 1745년(영조 21) 심리사(審理使)윤용(尹瑢)이 호타리보가 내지이기 때문에 긴요하지 않다는 글을 올려 결국 혁파되었다. 호타리보 소속의 병사와 군기는 모두 이동보에 합쳐졌다.

형태

둘레가 467척(약 141.5m)이다.

참고문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여지도서(輿地圖書)』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