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교(惠政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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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의 광화문 육조거리에서 종각으로 가는 도중에 놓인 다리.

개설

혜정교(惠政橋)는 북악산(北岳山) 아래 삼청동(三淸洞)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경복궁 오른쪽 궁장(宮墻) 외부를 따라 동십자각(東十字閣)을 지나 종로까지 도달한 부근에 세워진 다리이다. 경복궁을 나와 광화문 앞의 육조거리를 지나 동대문 방향으로 지나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였다. 따라서 조선 건국 초에 도성의 중심 도로와 교량을 기획할 때부터 세워졌다(『태종실록』 10년 2월 7일). 도심에 있던 교량답게 혜정교 인근은 종로 번화가인 동서대로였다. 조선 건국 초에 혜정교에서 창덕궁 동구 앞까지는 시전의 행랑이 800여 칸 있었다(『태종실록』 12년 2월 10일).

명칭 유래

다리의 이름 ‘혜정(惠政)’은 ‘왕이 은혜로운 정치를 베푼다’는 의미이다. 영조대에는 기우제 이후 비가 내리면 종묘에 행행하여 보사제(報祀祭)를 지냈다. 이때 제사를 마친 뒤 회란(回鑾)할 때 혜정교에 일시 정차하면서 죄가 가벼운 죄인들을 석방해 주기도 하였다(『영조실록』 3년 7월 27일).

정조도 다리의 명칭을 ‘은혜로운 정치를 편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정조는 각 지방의 관찰사 중에 가장 청렴하지 못한 자를 의금부 도사에게 잡아오게 한 뒤 자신이 직접 혜정교에 행차하여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혜정교의 의미가 자신의 행차와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때 정조는 도성의 백성들을 많이 모아 놓고 부정한 관찰사를 엄하게 신문하여 자백을 받은 다음 장오(贓汚)의 형률을 적용해서 해당 도의 백성들에게 사죄하도록 할 것이라고 하였다(『정조실록』 16년 11월 10일).

위치 비정

오늘날 광화문 사거리 교보생명에서 종로 방향에 위치하였다.

관련 기록

1434년(세종 16) 세종 때 발명한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를 최초로 혜정교와 종묘(宗廟) 앞에 설치하여 일영(日影)을 관측하였다(『세종실록』 16년 10월 2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도잡지(京都雜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한경지략(漢京識略)』
  • 『한양가(漢陽歌)』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 신병주, 『영조 때의 청계천 공사와 그 기록들-준천사실과 준천시사열무도』, 책과함께, 2007.
  • 이근호·조준호·장필기·심승구, 『조선후기 수도방위체제』,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1998.
  • 김취정, 「개화기 서울의 문화 유통 공간-광통교 일대의 서화(書畵)·도서(圖書) 유통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53, 2013.
  • 염정섭, 「조선후기 한성부(漢城府) 준천(濬川)의 시행」, 『서울학연구』11,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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