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중보(海東重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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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년(고려 숙종 8)에 주조되었으나 널리 유통되지 못한 고려시대의 화폐.

개설

고려의 관에서는 1102년(고려 숙종 7) 4월 주전도감을 설치하여 국가에서 사용하는 화폐를 주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전한 해동통보(海東通寶)는 국가적인 화폐유통 계획에 따라 주전되었으나, 실제 민간에서 활발하게 이용되지는 않았다. 이에 관에서는 1103년(고려 숙종 8)에 해동중보를 만들고, 더불어 삼한중보(三韓重寶), 삼한통보(三韓通寶), 동국통보(東國通寶), 동국중보(東國重寶) 등을 함께 제작하여 유통시켰다.

연원 및 변천

해동중보는 『고려사』에 따르면 해동통보의 발행 이후 1년이 지나 새로 주전되었다. 당시 고려 정부는 서로 다른 명칭의 동전을 5종 이상 한꺼번에 제작할 정도로 주전과 화폐 유통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짧은 시기에 여러 종류의 화폐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적, 경제적 변화가 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동중보 등의 고려 화폐는 조선시대에도 유통되었다(『중종실록』 10년 6월 8일)는 기록을 들어 우리나라의 화폐 유통의 기반은 고려 때부터 마련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형태

해동중보는 그 실물이 개경에서 발견되었다. 조선시대의 상평통보와 동일한 형태로 둥근 외형으로 가운데에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고, 상하좌우로 ‘해동중보(海東重寶)’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동전의 뒷면에는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 해동중보의 주성분은 구리이고 주석, 납 등을 합하여 주전하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해동중보가 주전된 구체적 내역과 민간에서 사용된 상황에 대한 내용은 역사서를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여러 가지 동전이 해동통보 이후 주전되었고 그 가운데 한 종류로 해동중보를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주전량은 많지 않았고 민간에서 널리 유통되지 않고 한정된 지역에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김도연, 「고려시대 은화유통에 관한 일연구」, 『한국사학보』10, 고려사학회, 2001.
  • 김병하, 「고려시대의 화폐 유통」, 『경희사학』3, 경희대학교 사학회, 1972.
  • 채웅석, 「고려전기 화폐유통의 기반」, 『한국문화』9, 규장각한국학연구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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