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무국(學務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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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때 국내 교육을 담당한 학부(學部) 산하에서 학무(學務) 행정을 전담하던 관서.

개설

1894년 6월 갑오개혁 때 학무아문이 설치되면서 그 산하에 전문학무국(專門學務局)과 보통학무국(普通學務局)이 설치되었다. 1895년 4월 학무아문이 학부로 바뀌면서 학무국(學務局)으로 통합되었다. 1895년의 학무국에서는 대학교 등 고등 교육 기관을 설치하지 않는 대신에 외국, 특히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일본식 학술 교육 체계를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1905년 2월에도 학부 관제가 개편되었으나 이전과 같은 내용으로 유지되었으며 1910년 8월까지 지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894년 6월 28일 의정부와 8아문으로 중앙 행정 기구가 개편되자 국내 교육과 학무에 관한 행정을 맡는 부서로 학무아문이 설립되었다. 그 산하 관서로는 전문학무국과 보통학무국이 있었다. 전문학무국에서는 중학교, 대학교, 기예학교(技藝學校), 외국어학교, 전문학교(專門學校)를 맡아보았다. 보통학무국에서는 소학교(小學校), 사범학교를 맡아보았다. 1895년 4월 1일 내각 관제로 개편되고 학무아문도 학부로 개편되면서 전문과 보통 학무국으로 나뉘어 있던 부서가 학무국으로 합쳐졌다.

조직 및 역할

학부 산하 학무국에서는 학령 아동의 취학과 소학교, 사범학교, 중학교, 전문학교, 외국어학교, 기술학교, 외국에 파견하는 유학생에 관한 사항을 맡았다. 학무국은 2등국으로 규정되었으며 학부 주사(主事)로는 11명을 정원으로 삼았다.

1차 갑오개혁 때에는 대학교를 정점으로 하는 전문 교육 학술 연구 기관의 설치를 정하였으나 2차 갑오개혁 시기에는 완전히 삭제되었다. 이로써 소학교, 사범학교, 중학교, 전문학교 등으로 이어지는 교육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대신에 외국에 유학생을 파견함으로써 선진 제국의 학술과 지식을 수용하게 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통해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강화하였다. 동시에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일본식 학술 사상과 교육 체계를 수용하도록 의도하였다.

1896년 2월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기에도 학부 관제와 학무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00년 4월 27일의 칙령 16호, 학부 관제 중 학무국을 1등국으로 개정하는 안건을 허가하여 반포하였다.

변천

1905년 2월 26일 칙령 22호로 학부 관제가 개편되었다. 학무국과 편집국(編輯局)으로 소폭 개편되었으며 학무국은 1등국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소학교, 사범학교, 중학교, 외국어학교, 전문학교, 기예학교, 외국 파견 유학생에 관한 업무도 그대로 맡았다. 학부 관제는 1910년 8월 한일 강제 병합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관보(官報)』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4, 국회도서관,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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