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부(河東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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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하동부 |
한글표제 | 하동부 |
한자표제 | 河東府 |
관련어 | 한다사(韓多沙), 하남(河南), 청하(淸河)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신라~조선 |
왕대 | 신라~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하동부(河東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4년 8월 21일, 『태종실록』 15년 3월 25일 |
현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하동부(河東府)는 신라의 한다사군(韓多沙郡)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하동군(河東郡)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시대에도 하동군이라 불렸으며 진주(晉州)의 속군(屬郡)으로 편성되었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지방관인 감무(監務)가 처음으로 파견되었으며, 이후에 하동현(河東縣)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4년(태종 14)에 남해(南海)를 통합하여 하남현(河南縣)이 되었으나, 1415년(태종 15)에 하동현으로 환원되었다. 1704년(숙종 30)에 하동부로 승격하고 도호부사(都護府使)가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다. 18세기 초반에 하동부의 읍치와 관아는 여러 차례 이전하다가 1745년(영조 21)에 현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지역에 정착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하동부는 하동군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하동부는 신라의 한다사군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하동군으로 개명하였고, 고려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하동군이 유지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하동군은 진주의 소속이 되었다가, 1172년에 감무가 처음 파견되었다. 이후에 하동현이 되었으며, 조선 건국 후에도 하동현이라 불렸다. 감무는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으로 개칭되었다. 1414년에 하동현은 남해현과 통합하여 하남현이 되고 현감은 현령으로 승격하였다(『태종실록』 14년 8월 21일). 하지만 1415년에 하동현은 해체되어 남해현과 분리되었으며, 하남현령 대신 하동현감이 임명되었다(『태종실록』 15년 3월 25일). 원래 하동현의 읍치는 현재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죽전마을 지역에 위치하였으나, 1702년(숙종 28)에 진주 소속이던 악양(岳陽)·화개(花開)·진답(陳畓)·적량(赤良) 4개 리를 하동에 소속시키고, 1703년(숙종 29)에는 읍치를 진답면 두곡(豆谷)으로 이전하였다. 1704년에 하동부로 승격하였다.
조직 및 역할
하동부는 신라 경덕왕 때 하동군이라 불렸으며, 9주 중 강주(康州)의 관할하에 편제되었다. 당시 하동군은 성량현(省良縣: 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일대)과 악양현(岳陽縣: 현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일대), 하읍현(河邑縣) 3개의 영현을 거느렸으며, 지방관으로 군태수(郡太守)가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하동군이었으나, 진주(晉州)의 소속이 되어 하동군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1172년에 감무가 처음으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하동군은 하동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고려시대 하동군에는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하동현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으며, 감무는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하동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종6품의 군수와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하동현은 1704년(숙종 30)에 하동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조선후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하동부읍지(河東府邑誌)』에 의하면 3품의 무관(武官)이 도호부사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인리(人吏) 41명, 장교(將校) 70명, 지인(知印) 17명, 사령(使令) 27명, 관노(官奴) 20명, 관비(官婢) 10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3품의 도호부사가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의 내용에 따르면 하동은 12개의 면과 112개의 촌으로 구성되었으며, 호수는 4,221호, 인구는 총 20,549명으로, 남자 10,084명, 여자 10,465명이었다. 조선시대에 하동의 읍치와 관아는 여러 차례 이동하였으며, 1745년(영조 21)에 현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지역에 정착하였다.
변천
1704년에 하동부를 설치한 이후에도 하동의 읍치는 몇 차례 더 이전하였다. 진답면 두곡에 위치한 읍치는 1730년(영조 6)에 나동(螺洞: 현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으로 이전하였으며, 1745년(영조 21)에는 다시 항촌(項村: 현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으로 이전하였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하동부는 하동군이 되어 진주부(晉州府)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하동군은 경상남도 관할의 3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이후에도 하동군은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하동부읍지(河東府邑誌)』
- 『호구총수(戶口總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