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선(弼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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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 소속의 정4품 관직.

개설

전통시대 세자의 교육 및 보도(輔導)를 담당하기 위한 관청 및 관직은 신라 경덕왕 때 동궁아관(東宮衙官)을 두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때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전통이 고려시대의 동궁관(東宮官) 및 세자부로 이어져, 태자 및 세자의 교육과 관련한 각종 관직명이 등장하게 되었다. 필선(弼善)의 경우 『고려사』 「백관지」 ‘동궁관’에 따르면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4품의 시학(侍學)을 좌·우필선(左·右弼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에 새로운 관제가 반포될 때 빈객의 직제가 마련되었다. 당시 세자의 강학(講學)과 시위(侍衛)를 위해 세자관속(世子官屬)이 설치되었다. 세자관속으로 정2품의 좌사(左師)와 우사(右師)가 각 1명, 종2품의 좌빈객(左賓客)과 우빈객(右賓客)이 각 1명, 종3품의 좌보덕(左輔德)과 우보덕(右輔德)이 각 1명, 정4품의 좌필선(左弼善)과 우필선(右弼善)이 각 1명, 정5품의 좌문학(左文學)과 우문학(右文學)이 각 1명, 정6품의 좌사경(左司經)과 우사경(右司經)이 각 1명, 정7품의 좌정자(左正字)와 우정자(右正字)가 각 1명, 정8품의 좌시직(左侍直)과 우시직(右侍直)이 각 1명 배치되었다. 이후 세자관속이 세자시강원으로 개편되면서 필선의 직제는 그대로 유지되다가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필선은 1명이고 품계는 정4품으로 나타난다. 『경국대전』의 필선은 조선 건국 직후의 좌필선과 우필선에 비하면 1명이 줄어든 것인데, 이는 1460년 5월에 관직을 정비하면서 이전의 좌필선과 우필선을 통합하여 필선으로 한 결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성종 이후 겸필선(兼弼善)이 임명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선중기 이후로 겸필선이 추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 필선과 겸필선이 『속대전』에 실리게 되었는데, 필선과 겸필선은 이전의 품계 그대로 정4품이었다.

담당 직무

필선은 ‘선을 보필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의 세자는 장차 왕이 될 신분이므로 세자의 제왕학 교육 목표 역시 세자 개인의 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백성들의 선까지도 개발·육성하는 데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필선으로 하여금 세자의 품성과 학문을 인도하게 함으로써, 세자의 선에 대한 학문적 기초와 실천적 토대를 확립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변천

1894년(고종 31) 관제 개정 시 시강원이 궁내부에 합속되었는데, 이때 필선의 직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황제 체제가 성립되면서 세자시강원 역시 황제 체제에 맞추어 황태자시강원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조선시대의 세자익위사 역시 황태자익위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황태자시강원에 소속된 관원의 명칭이나 지위는 이전과 같았다. 대한제국 멸망 후 황태자시강원은 이왕직(李王職) 서무계(庶務係)에 흡수·통합됨으로써 황태자시강원에 소속된 필선과 겸필선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강학청일기(講學廳日記)』
  • 『시강원지(侍講院志)』
  • 김문식·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교육』, 민속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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