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지(平壤志)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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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평양지 |
한글표제 | 평양지 |
한자표제 | 平壤志 |
분야 | 읍지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선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윤두수 |
간행처 | |
간행년일 | 1590 |
권책수 | 9권 2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소장처 | 규장각, 서울대학교 백상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평양지(平壤志) |
이 책은 1590년(선조 23) 평안도 관찰사 겸 평양부윤윤두수(尹斗壽)가 편찬, 간행한 평양부 읍지다.
개설
이 책은 『서경지(西京志)』라고도 하는데, 원지는 1590년 평안도 관찰사윤두수가 엮어 펴냈고, 속지는 1730년(영조 6) 그의 후손 윤유(尹游)가 펴낸 것을 1837년(헌종 3) 합간(合刊)한 것이다. 후속지는 1855년(철종 6) 그 지방 사람이 편집한 것을 후인이 속지(續志)에 합본(合本)하였다.
원지의 내용은 강역(疆域)·분야(分野)·연혁(沿革)·성지(城池)·부방(部方)·군명(郡名)·풍속(風俗)·형승(形勝)·산천(山川)·누정(樓亭)·사묘(祠墓)·공서(公署)·창저(倉儲)·학교(學校)·고적(古蹟)·직역(職役)·병제(兵制)·역체(驛遞)·교량(橋梁)·토산(土産)·토전(土田)·공부(貢賦)·교방(敎坊)·원정(院亭)·사우(寺宇)·호구(戶口)·인물(人物)·효열(孝烈)·고사(古事)·문담(文談)·신이(神異)·잡지(雜志)·시문(詩文) 등을 수록하였다.
현존하는 지방지 중 편찬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평양 지리사 연구에는 특히 중요한 자료이다.
편찬/발간 경위
윤두수의 『평양지(平壤志)』는 1590년 편찬 당시 여러 자료에 수록된 평양 관련 정보들을 거의 대부분 포함시켰다고 할 수 있다. 『평양지』의 ‘인용서책(引用書冊)’에서 제시한 책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수서(隋書)』, 『당서(唐書)』, 『요동지(遼東志)』 같은 중국 역사서와 『삼국사(三國史)』, 『고려사(高麗史)』, 『동국통감(東國通鑑)』 류의 국내 역사서, 『여지승람(輿地勝覽)』과 같은 지리지, 『청구풍아(靑丘風雅)』, 『목은집(牧隱集)』, 『파한집(破閑集)』, 『동문선(東文選)』, 『속동문선(續東文選)』 등의 시문집이나 시선집이다.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권4에 수록된 『고사(古事)』처럼 『고려사』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국통감』의 기록만으로 구성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여러 자료에서 취합해서 정리한 것이고, 명(明)나라 사신들의 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시’의 경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만이 아니라, 중국 사신과 조선 관반(館伴)들이 수창한 시를 수록한 『황화집(皇華集)』의 내용을 참고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므로 ‘인용서책’에 명시된 책 목록은 주로 참고한 자료 정도의 의미일 것이고,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실제로 참고했던 책들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평양지』의 내용은 『동국여지승람』의 ‘평양부’와 상당 부분 겹치거나, 상세하게 서술한 정도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예 새롭게 추가한 항목도 있었다. ‘학교’의 규범과 ‘공부’의 조세 규정 등은 전국지에 실리기에는 부적절하지만 실질적인 행정 운영에 유용하기 때문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담(文談)’, ‘신이(神異)’, ‘잡지(雜誌)’에 수록된 일화, 『동국여지승람』에 비해 훨씬 더 크게 확장된 ‘시(詩)’, ‘문(文)’도 인상적인데, 이는 『평양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시문은 『평양지선』으로 간행, 유통되었다.
서지 사항
9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4주쌍변이고, 반엽광곽은 23.9×17cm이다. 10행 18자의 유계, 상하내향문어미(부동)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3.6×22.4cm이며, 규장각, 서울대학교 백상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책머리에 윤두수의 서문과 평양 중심부의 지도인 평양관부도(平壤官府圖), 평양부 행정 관내 지도인 평양폭원총도(平壤幅員總圖), 『평양지』 편찬에 참조한 인용서책 목록, 평양지 목록이 있다.
내용 구성은 제1권에 강역·분야·연혁·성지·부방·군명·풍속·형승·산천·누정·사묘·공서·창저, 제2권에 학교·고적·직역·병제·역체·교량·토산·토전, 제3권에 공부·교방·원정·사우·호구·인물·효열·문과(文科)·무직(武職)·연방(蓮榜)·환적(宦蹟)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제4권에 고사, 제5권에 문담·신이·잡지, 제6권부터 제8권까지 시(詩), 제9권에 문(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읍지는 윤두수가 편찬한 『연안읍지(延安邑誌)』(1581년), 정구(鄭逑)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1587년)와 함께 현전하는 16세기 읍지로서, 초기의 읍지 형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책이다. 특히, 이 읍지만 유일하게 원본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그 의의가 크다.
또한 이 읍지는 그 뒤 평안도 지방에서 편찬되는 읍지의 이상적인 형태로 인정되어, 이 책의 체재를 많은 읍지들이 이어받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범례를 따로 두지 않고, 각 항목마다 머리말을 두어서 항목 설정의 이유, 항목의 유래와 출처, 수록 기준 등을 설명하고 있는 점이 이 시기의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방의 읍지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이를 통해, 항목의 편제, 내용의 구성, 편찬자의 읍지 작성 의도 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방조를 읍지에 설치하는 이유는 백성들의 거처를 존중하고 백성들의 숫자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니, 이를 가지고 세금을 정하고, 이로 말미암아 역(役)을 나눌 수 있다고 서문에 명시함으로써 읍지의 성격 파악에 도움이 된다.
또한 중국 사료 등 기존 문헌을 광범위하게 고찰, 설명하여 현상의 역사적인 이해, 특히 서로 다른 견해들의 파악에도 유용하다. 대동강은 산천조에 기록되어 있는데, 수원지(水源地)·유로(流路) 등 자연적인 내용 외에도 대동강을 패수(浿水)로 규정하면서, 『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사기열전』·『당서』 등의 문헌에 실린 패수 비정에 관한 여러 이설들을 소개하였다.
이 책은 비교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읍지 편찬을 시도하는 등 방법론상의 특징을 지니며, 내용상으로는 전반적으로 역대 삼조선(三朝鮮: 전조선(前朝鮮)·후조선(後朝鮮)·위만조선(衛滿朝鮮))의 도읍지, 특히 기자(箕子)의 도읍지 및 오랜 역사를 지닌 도회지로서의 자부심을 강하게 반영하여, 인물· 시문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학교조에는 ‘장도회규(長都會規)’·‘계유사목(癸酉事目)’·‘서원사목(書院事目)’ 등이 수록되어, 16세기의 향교 운영 및 유림의 동향 등을 살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비교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읍지 편찬을 시도하는 등 방법론상의 특징을 지니며, 내용상으로는 전반적으로 역대 삼조선의 도읍지, 특히 기자(箕子)의 도읍지 및 오랜 역사를 지닌 도회지로서의 자부심을 강하게 반영하여, 인물· 시문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김명은, 「朝鮮後期 平壤敎坊의 規模와 公演活動-『平壤志』와 <平壤監司歡迎圖>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제31집, 한국음악사학회, 2003.
- 박정애, 「18-19세기 箕城圖 屛風 연구」, 『고문화』 제74집, 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09.
- 배인교, 『조선후기 지방 관속 음악인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 송혜진, 「조선후기 관서지방의 공연 시공간과 향유에 관한 연구」, 『공연문화연구』 제22집, 한국공연문화학회, 2011.
- 여상진, 『朝鮮時代 客舍의 營建과 性格 變化』,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