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성문(平成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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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 본궐 영역의 서문.

개설

평성문은 1896년(고종 33)에 만들어져 경운궁의 서문 역할을 담당한 문이다. 평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미국공사관이 나타난다.

위치 및 용도

경운궁의 서쪽에 위치하는 문이다.

변천 및 현황

평성문(平成門)은 경운궁 본궐 영역의 서문이다. 평성문을 통해 외부로 나가는 경우에는 내문로를 의록문으로 사용하였다. 평성문 남쪽에는 근위병직소(近衛兵直所)가 있고, 안쪽에는 매우 넓은 마당이 만들어져 있다. 고종은 이곳에서 평양대(平壤隊), 강화대(江華隊) 등의 군부대를 조련하였다(『고종실록』 37년 9월 2일). 평성문 이외 경운궁의 문들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나타난다.

평장문(平章門)은 대한문(大漢門) 바로 북쪽에 위치하는 문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가 진행되는 경우에는 대한문을 이용하지만, 일반적으로 궁궐에 용무가 있는 관원이나 외교관들은 평장문을 통해 출입하였다. 평장문 내부 궁성 안쪽에는 남북 양쪽으로 2층의 조적조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원수부(元帥府)의 경호대가 사용한 건물로써 황제의 경호 업무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공식적인 업무로 궁궐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신분 확인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포덕문(布德門)은 경운궁 동북쪽에 위치하는 문이다. 포덕문은 황제가 종묘 등 외부에 출궁할 때 주로 이용했다. 경운궁 내에서 종로 등으로 진입할 때 이용하면 이동 거리가 가장 짧다.

건극문(建極門)은 경운궁 궁장 남쪽에 위치하는 문이다. 원래 이곳에는 경운궁 초기 정문인 인화문(仁化門)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1902년(광무 6)에 중층 중화전(中和殿)을 건립하면서 인화문을 없애고 그 자리에 건극문을 세웠다.

생양문(生陽門)은 경운궁의 북쪽 궁장에 만들어진 문이며 영국영사관의 대문이 있는 곳에 만들어졌다. 경운궁에서 생양문을 이용한 사례는 극히 드물며 모두 여성과 관련된 특징을 보인다. 1906년(광무 10) 5월 13일에는 황태자비의 초간택, 1907년(광무 11) 1월 28일에는 영친왕 부인의 초간택이 있었는데, 모두 문로를 생양문으로 이용하였다.

회극문(會極門)은 경운궁 본궐 영역의 서북쪽에 위치하는 문이며 영국영사관과 담장을 두고 붙어 있다. 경운궁 본궐 영역에서 돈덕전(惇德殿) 또는 영성문(永成門) 대궐로 행차하고자 하는 경우, 외문로를 회극문으로 이용하였다.

1902년 중층 중화전을 영건하면서 경운궁 서남쪽에 운교를 건립했다. 이 운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는 지역까지 궁궐 외부를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독일공사관이 있었는데, 조정에서 이 땅을 매입하여 의정부(議政府)를 건립했다. 이때 경운궁 궁장과 운교 사이에 하나의 대문을 설치했는데 이것이 용강문(用康門)이다.

형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덕수궁평면도(德壽宮平面圖)」에 따르면, 다른 문들은 모두 단칸으로 묘사된 반면 평성문은 2칸의 건물로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 문화재청, 『덕수궁 복원정비기본계획』, 문화재청,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