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도(佩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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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용으로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인 장도 가운데 남자가 몸에 차는 칼.

개설

패도(佩刀)는 일상생활에 쓰기도 하고 호신(護身)·자해(自害) 및 치장할 때도 사용하며, 전투 시 살상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장도(粧刀) 중 차게 되어 있는 것은 패도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은 낭도(囊刀)라 한다.

패도 즉 장도는 여자에게는 정절도(貞節刀)가 되고 남자에게는 충절도(忠節刀)의 역할을 한다.

연원 및 변천

패도는 몽골 여인들이 난폭한 남성으로부터의 호신용으로 차던 것이 고려 때 들어와 조선시대에 널리 일반화되었다. 한때 전투 상황에서 살상용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나(『성종실록』 22년 7월 13일), 실용성이 적어지며 모양도 작아지고 장식용으로 변질되었다. 마침내 1498년(연산군 4)에는 사치금제(奢侈禁制)에서 서민의 은장도 사용을 금하였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연산군일기』 4년 6월 15일), 1670년(현종 11)에는 유생 잡직 및 서민 남녀 중 은장도를 차는 자를 논죄하라고까지 하였다.

형태

패도는 칼집과 자루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칼집과 자루가 여러 모로 된 8모형은 ‘모잽이 칼’이라 부르며, 칼집과 자루가 네모꼴은 사모형, 둥근 것은 원통형, 을(乙)자형은 을자형이라 한다. 여기에 첨사가 따르면 첨사모잽이패도로 부른다.

칼집과 칼자루는 금은·오동(烏銅)·백동(白銅)·흑시(黑柹)·흑단·우골·상아·산호·호박·비취·옥죽절(玉竹節) 등을 사용하였으며, 칼날은 강철을 사용하여 도신(刀身)에 일편심(一片心) 등을 흘림으로 새겼다. 신분과 지위의 표상이기도 했던 패도는 절개를 뜻하는 소나무와 대 등을 그려 넣은 여성용과 달리 용, 거북 등의 십장생을 그려 넣었다.

패도의 크기는 큰 8모형의 경우 전장 5촌, 도신 3촌 정도이고, 사모·원·을자형의 경우는 전장 3촌, 도신 1.5촌으로 크기가 보통이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패도는 먼 길을 떠나는 선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휴대용품이었다. 주막에 들러 음식을 먹을 때도 패도에 달린 젓가락 같은 ‘첨사도’를 꺼내 독이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내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 예용해, 『粧刀匠』, 문화재관리국지정보고서, 1973.
  • 진홍섭, 『한국금속공예사』, 일지사, 1980.
  • 김성혜 외, 「刀劍의 기능성 연구 : 육군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육군사관학교육군박물관 학예지』6,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