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주(通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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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의 동남부, 경항대운하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

개설

중국 북경의 동쪽에 위치하며, 천진·하북성과 접한다. 대운하가 지나 수륙교통이 모두 편리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조선 사신단이 중국을 오고갈 때 거치는 곳이기도 하였다.

명칭 유래

1151년 원이 북경에 중도를 건설한 이후 노현(路縣)에 자사주(刺史州)를 설치하고 조운통제(漕運通濟)의 의미를 취하여 지명의 명칭을 통주라 하였다. 1368년 명의 장수 서달(徐達)이 원의 대도(大都: 현 북경)를 공격해 점령한 이후 북평(北平)으로 고치고 아울러 대도로(大都路)를 북평부(北平府)로 고치었다. 동시에 노현도 통주로 변경되었다. 통주와 곽주(郭州)는 북평부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1381년 2월 곽주를 곽현으로 등급을 낮추고 통주에 예속시켰다. 이로 인하여 통주는 삼하(三河)·무청(武淸)·향하(香河)·곽현(漷縣)이라는 4현을 거느리고 북평부에 속한 뒤 이후로는 더 이상 변하지 않았다. 1403년 정월에 북평을 북경으로 고치고 북평부가 순천부로 변경되었다. 이후 통주 및 휘하의 4개 현은 모두 순천부에 예속되었다. 1659년 성곽현(省漷縣)이 통주에 들어와 이때 통주는 삼사·무청·보지(寶坻) 3현을 거느렸다. 1728년 삼하·무천·보지 3현을 직속시키고 통주를 산주(散州)로 삼은 후 다시 현을 거느리지 않았다.

자연환경

서로는 통혜하(通惠河)와 운하(渾河)가 있는데, 즉 상건(桑乾)이며 주의 동쪽으로는 장가만(張家灣)에 도달하여 백하(白河)에서 함께 합쳐진다.

형성 및 변천

통주의 과거 명칭은 모두 수륙교통이 원활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통주가 역사상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관련 기록

조선 사신이 북경을 오갈 때에 통주를 거치곤 하였다(『중종실록』 32년 4월 30일).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오는 사신들은 통주에 도착하여 40일 동안 행장을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선조실록』 39년 1월 23일).

조선에 통주는 사람과 물품이 모여들고 교통이 편리하며 번화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선조실록』 30년 2월 25일)(『숙종실록』 5년 11월 29일).

참고문헌

  • 『명사(明史)』
  • 楊昕, 「朝鮮使臣筆下的明代通州」, 『延邊大學學報』 42, 200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