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太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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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동진(東晉)의 효무제(孝武帝)와 안제(安帝)가 사용한 연호(376년~396년: 효무제5~안제2).

그 외에

중국 오(吳)나라 대제(大帝) 대에 사용한 연호(251년~252년: 대제30~대제31).

중국 전량(前涼)의 문왕(文王) 대에 사용한 연호(324년~345년: 문왕1~문왕22).

개설

중국 동진의 효무제와 안제가 사용한 연호이다(376년~396년).

효무제는 ‘영강(寧康)’을 첫 번째 연호로 사용하다가 376년부터 2번째 연호로 ‘태원(太元)’을 사용하였다. 그가 죽자 다음으로 황위에 오른 안제가 ‘태원’을 이어 사용하다가, 즉위 2년인 397년에 ‘융안(隆安)’으로 개원하였다. 이것은 황제가 죽고 다른 황제로 바뀌어도 그 해에는 이전 황제의 연호를 사용하던 중국의 원칙 때문이다.

조선(朝鮮)에서는 정치 · 사회 · 문화적 변화 및 자연 재해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예를 참조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원 연호 또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한다.

이 외에도 태원 연호는 중국 역사에 여러 번 등장한다. 우선 태원 연호는 중국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대제가 사용한 6개의 연호 가운데 5번째 연호로(251년~252년), 251년 5월부터 252년 2월까지 10개월 동안 사용하였다. 또한 중국 전량의 문왕(文王)장준(張駿)도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324년~345년). 이 시기 전량은 대외적으로는 서진의 연호였던 ‘건흥(建興)’을 사용하였으나, 대내적으로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태원’ 연호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이 두 나라의 연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숙종실록(肅宗實錄)』
  • 『진서(晉書)』
  • 『삼국지(三國志)』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