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련(吹鍊)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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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취련 |
한글표제 | 취련 |
한자표제 | 吹鍊 |
동의어 | 제련(製鍊) |
관련어 | 납(鑞), 단천연은법(端川煉銀法), 은(銀), 제련로(製鍊爐), 주물(鑄物) |
분야 | 경제/산업/광업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송양섭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취련(吹鍊) |
풀무질을 통해 광석을 녹여 금속을 분리하고 추출하여 정제하는 기술.
개설
일반적으로 금속의 사용은 청동기시대를 상한으로 잡는다. 이 시기부터 각 광물에서 금속을 채취해내는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취련(吹鍊)이다. 조선시대 금속은 철과 은의 취련이 대표적인 가운데 구리 등 유색 광물의 생산도 활발하였다. 금속류는 전국 각지에 있는 장인들이 광산에서 채취하고 있었다. 이 결과 각 금속에 따른 취련법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 및 특징
은을 취련하는 방법에서 대표적인 것이 단천연은법(端川煉銀法)이다. 단천연은법은 16세기 김감불과 김검동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납에서 은을 채취하는 것이었다. 무쇠화로 안에 매운 재를 둘러놓고 납을 조각조각 끊어서 그 안을 채운 다음 깨어진 질그릇으로 사방을 덥고 숯으로 온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은의 효율적인 채취가 가능해졌다. 은은 귀금속으로 대우를 받았지만 자연에서 순수한 은을 얻는 것은 어려웠다. 때문에 불순물이 많은 은광석에서 순수한 은을 채취할 수밖에 없었다. 단천연은법은 녹는점의 차이를 이용에 납과 은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납이 다량으로 함유된 은광석에 온도를 가하면 납이 먼저 녹아 재 밑으로 흘러내리고 은은 잘 녹지 않아 위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의 은 생산을 늘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철은 철광석을 제련로나 주물로에 녹여 얻는데 그 용도에 따라 취련 방법이 다르다. 조선시대의 철은 주로 무[銑鐵], 시우쇠[熟鐵] 등으로 구분되었다. 무쇠는 주로 주물 작업을 통해 얻는 철이다. 철광석을 주물로에서 1400℃ 이상으로 10시간 이상 가열하였다. 무쇠는 탄소량이 2% 이상으로 높아 단조가 불가능하고 주물 작업으로 주로 가마솥이나 농기구를 생산하였다. 숙철은 제련로(製鍊爐)에서 1200~1300℃ 정도로 장시간 가열하면 묵철 덩어리가 생기는데 이를 정련로와 은조로에서 분쇄하여 가열하여 만들어진 철이다. 이 철은 탄소 강도가 낮아 단조가 가능하여 도, 검 등을 만드는 데 쓰였다.
변천
15세기 광물의 생산 주체는 주로 관이었다. 15세기 철은 주로 무기와 수도건설에 공급되었다. 정부에서는 철을 수취하기 위해 염철법을 실시하고 토지 면적에 따라 철을 수취하였다.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 민을 동원할 때 부역제적 방식을 이용하였다. 16세기 단천연은법의 발견으로 은 생산이 급격하게 증대되었다. 이 결과 잠채가 발생하고 민간인들이 광물 생산에 관여하게 되었다. 17세기 접어들면서 설점수세제가 도입되고 민간인의 광물 채굴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조선 정부는 민에게 광산을 의탁하고 별장을 파견하여 세금 징수만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민영 수공업이 발달하게 되고 은점이 특히 많이 설치되었다. 18세기에 영조는 ‘별장수세제’를 혁파하고 광산이 있는 해당 읍 수령에게 세금을 걷게 하는 ‘수령수세제’가 실시되었다.
참고문헌
-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 유승주, 『조선시대 광업사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