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집(秋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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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의 시문집.

개설

『추강집(秋江集)』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의 시문집이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조신(曺伸)의 발문과 유홍의 구발(舊跋), 방의 중간 발, 후손 상규의 발문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초간본은 1577년(선조 10) 외증손 유홍(兪泓)에 의해 5권 4책으로 간행되었고, 중간본은 1677년(숙종 3) 유홍의 증손 방(枋)에 의해 5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서지 사항

5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32.8cm 가로 21.0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 시 40수, 부 6편, 권2에 시 143수, 권3에 시 120수, 권4에 상서(上書)ㆍ서(書)ㆍ서(序) 각 1편, 기 6편, 잡저, 권5에 기 1편, 논 4편, 권6에 잡저 3편, 권7에 잡저ㆍ제문 각 2편, 권8에 속록(續錄)으로 시 5수, 전(傳) 2편, 부록으로 시장(諡狀)ㆍ묘갈명ㆍ봉안문ㆍ축문ㆍ척유(摭遺)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의 많은 시는 고(古體)ㆍ근체(近體) 모두 평명(平明)하고 의승(義勝)하다 하겠다. 당시 별로 유행하지 않던 가행류(歌行類)를 비롯, 오언ㆍ칠언의 고시(古詩)가 많아 주목된다. 증답시(贈答詩) 중에서 김시습(金時習)과 주고받은 시에는 지기(知己)에게 부치는 무한한 감개가 깃들어 있다.

부의 「옥부(屋賦)」ㆍ「대춘부(大椿賦)」 등은 장대한 기상과 웅혼한 포부를 기탁한 문장으로 노장(老莊)의 기식(氣息)이 감돌고 있다.

기 가운데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는 금강산을 유람한 기행문으로서, 금강산 주룡(主龍)의 발원부터 시작해, 여러 명칭과 각 문헌상에 나타난 전거를 병시하고, 노정ㆍ풍광 등을 상세하게 쓴 뛰어난 저술이다.

논의 심(心)ㆍ성(性)ㆍ명(命)의 3론(三論)은 당시 유가(儒家)들이 논변에 열중하던 이기론(理氣論)의 문제들을 다뤘다.

특히 「성론(性論)」은 여러 사람의 견해를 비판하고 자신의 소견을 피력한 것으로 조선조 성리학연구에 좋은 참고가 되는 동시에 저자의 학술적 온오(蘊奧)를 엿볼 수 있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귀신론(鬼神論)」은 그가 29세부터 31세에 이르는 동안 저술한 장편의 논문이다. 유(儒)ㆍ불(佛)ㆍ도(道) 3교의 귀신에 관한 설을 검토하고, 제가의 견해를 거론하면서 이기론과 결부시킨 귀신관을 피력하고 있다.

「냉화(冷話)」는 시문(詩文)과 일사(逸事)에 관한 전문(傳聞)과 체험을 단편적으로 만록(漫錄)한 것이다. 기문(奇聞)ㆍ일사의 필록(筆錄) 이외에 26세로 요절한 안응생(安應生)의 평생과 자신과의 우의, 김시습의 언행, 척당불기(倜儻不羈)한 인물 등에 관한 서술은 저자의 행색(行色)과 의기(意氣)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은 저자와 함께 수업하고, 종유하던 사람들의 인물록으로, 그들의 신상을 자세히 적어 놓았다. 김굉필(金宏弼)을 비롯하여, 김시습 등 당시의 명사들을 수록하고 있어서, 그의 교유 관계를 알게 해 준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남효온은 비극적인 생애를 마친 단종(端宗)을 위해, 출사(出仕)를 거부하고 은둔한, 생육신(生六臣)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는 분으로 호는 추강(秋江)이다. 그는 우수한 시인이자,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특히 동시대의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모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지치(至治)를 지향하는 정통 유가를 자처했던 그에게 있어, 역사는 현재를 재는 잣대이자, 미래를 비추어주는 감계(鑑戒)였기 때문이다.

기행과 유람 때 지었던 시와 산문들을 통해, 그는 고려라는 나라에 대해 자기가 지닌 기억들을 진술하고, 나름대로 명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조선 개국공신의 후손임을 큰 자부심으로 여겼던 남효온의 경우, 시문 도처에서 고려에 대한 역사적 견해를 표출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특히 고려 후기 군주와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

그는 『고려사(高麗史)』의 왜곡된 부분을 그대로 신빙하고 있으며, 나아가 군주의 악행은 결국 망국(亡國)이라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유가의 이론을 자신의 신념 체계로 완벽히 이행시키고 있다. 남효온은 고려의 멸망은 군주를 보필하는 신하의 잘못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당시 세조조의 훈구대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성종의 조정을 풍자적으로 지적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또한 남효온의 시편들에는 이성계와 그 추종자들이 무력에 의해 고려 왕조를 전복시킨 사건인 이른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작품들이 몇 편 존재한다. 이 시들은 위에서 든 고려조 후기 군주에 대한 비판과 신하들에 대한 평가를 읊은 시들과 정치의식 면에서 서로 상응하고 있다. 이 연작시의 핵심어는 결국 천명(天命)과 선양(禪讓)으로서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인 남효온도 시를 통해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왕조의 정통성을 강변하고 있다. 고려의 정치와 이념에 대해 남효온이 견지했던 관견은 고려조의 사찰을 찾아가서 썼던 시편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양적으로 매우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사찰 기행시들을 통해, 때로는 직설적인 어조로, 때로는 풍자적인 어조로, 불교의 교리를 비판하기도 하며, 고려 말엽 승려의 혹세무민(惑世誣民)과 그에 따른 정치적 폐단을 적시하기도 한다. 고려 불교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사례의 예거와 비판은 결국 고려 왕조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과 조선왕조의 개국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하나의 논거로 작용하고 있다. 고려 왕실의 불교 신앙에 대한 작자의 비판은 또한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 선호에 대한 경계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권혁명, 「남효온의 자만시(自挽詩) 연구」, 『동양한문학연구』 제27집, 동양한문학회, 2008.
  • 김성언, 「추강 남효온의 시에 나타난 고려의 기억」, 『석당논총』 제42집,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08.
  • 정출헌, 「조선 전기 잡록과 『추강냉화』-남효온의 깊은 슬픔과 시대정신」, 『민족문학사연구』 제54호, 민족문학사연구소, 2014.
  • 정출헌, 「남효온의 송도유람과 『송경록(松京錄)』의 울울한 여정」, 『한국한문학연구』 58권, 한국한문학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