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감황은편(推感皇恩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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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392년(태조 1)부터 1637년(인조 15)까지 약 240년 간 명(明)나라에서 보내온 제문·고칙·지장 및 예부(禮部)의 자문(咨文) 등을 2책에 철한 것으로, 1769년(영조 45) 승문원(承文院)에서 인쇄·간행한 책이다.

개설

이 책은 1766년(영조 45) 12월 왕이 친히 원인손(元仁孫)과 채제공(蔡濟恭)에게 명하여, 편집케 하였으며, 그 시기는 조선 개국 초부터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즉 1392년부터 1637년까지 약 240년간이다. 내용은 먼저 왕의 행장(行狀)을 적은 다음 명에서 보내 온 선왕(先王)이나 왕후(王后)에 대한 제문(祭文), 고명(誥命)·금인(金印)을 사(賜)하는 칙서(勅書), 그 밖의 자문(咨文) 등을 연대에 따라 수록하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풍학조(馮學祖, 1792~1875)가 1828년(순조 28)에 명나라에 대한 존숭과 관련된 글을 모아 엮은 『열천직중록(冽泉直中錄)』에 들어 있는 ‘경봉각형지안’에는 『추감황은편(追感皇恩編)』을 인출(印出)하여, 경봉각 등에 소장하게 된 본말을 밝혀 놓았다. 즉 1769년(영조 545)에 왕이 승문원에 나아가, 예전에 전해진 명나라의 조칙이 청(淸)나라의 조칙과 섞여 한 상자에 소장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따로 한 책으로 인출하도록 하고, ‘추감황은편(追感皇恩編)’이라는 제목을 지어, 어필로 쓰고, 경봉각(敬奉閣)과 흠봉각(欽奉閣)을 새로 지어, 각 10부를 보관하게 하였다고 한다.

서지 사항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활자본(무신자(戊申字))이다. 4주쌍변이고, 반엽광곽은 25.6×17.6cm이다. 10행 18자, 주상행, 상하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5.8×24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1392년부터 1637년까지 약 240년 간 명나라에서 보내온 제문, 고칙, 지장(誌狀) 및 예부의 자문 등을 2책에 철한 것으로 1769년 승문원에서 인쇄, 간행한 것이다.

어제발문(御製跋文)에 보면, 태조 이후로 명나라 황제에게서 은혜가 지극하지만, 잘 받들지 못하였는데, 풍천록(風泉錄)을 보고서 성은(聖恩)에 감복하여, 이 책을 짓게 되었다고 그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중국의 명나라의 황제가 우리나라에 보낸 여러 가지 문서들을 묶어서 발행한 것이므로,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참고문헌

  • 박현모, 「영조의 위기극복 리더십 연구-'이인좌의 난'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제19집 제1호,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2010.
  • 송지원, 「국왕 영조의 국장절차와 『국조상례보편』」, 『조선시대사학보』 제51호, 조선시대사학회, 2009.
  • 신태영, 『명나라 사신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 다운샘, 2005.
  • 이경구, 「1740년(영조 16) 이후 영조의 정치 운영」, 『역사와 현실』 통권53호, 한국역사연구회, 2004.
  • 조윤선, 「조선후기 영조 31년 을해옥사의 추이와 정치적 의미」, 『한국사학보』 제37호, 고려사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