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가곡(帖價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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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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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첩가곡 |
한글표제 | 첩가곡 |
한자표제 | 帖價穀 |
관련어 | 진휼(賑恤), 노직첩(老職帖), 모곡(募穀) |
분야 | 경제/재정/환곡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광해군~고종 |
집필자 | 양진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첩가곡(帖價穀)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48년 1월 24일 |
진휼곡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명첩을 발행한 대가로 마련된 곡식.
내용
진휼곡(賑恤穀)으로 사용되는 것은 비황곡(備荒穀)·사진곡(私賑穀)·첩가곡(帖價穀) 등이 있었다. 이 중에 첩가곡은 진휼곡을 모집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였다. 첩가곡은 모곡(募穀), 즉 곡물을 민간에서 모집하여 조성된 것이었다.
모곡은 광해군대에 노직첩(老職牒)·추증당상직첩(追贈堂上職帖)·추증당상가선실직첩(追贈堂上嘉善實職帖)을 얻으려 하는 자가 많아 시행한 적이 있다. 이후 현종대에 극심한 가뭄을 당하여 진휼곡이 크게 부족하자, 다른 지방으로부터 곡물을 이전하였다. 그러나 제때에 곡물이 이송되지 않자, 새로운 대책으로 제시된 것이 모곡이었다. 이때 가설직첩(加設職牒)·노직첩(老職牒)·서얼직첩(庶孼職牒) 등을 이용하여 곡식을 모았다. 이처럼 직첩(職牒)을 이용하여 조성된 진휼곡이 첩가곡이었다.
용례
慶尙監司李潭狀請空名帖 而此不可輕議 前劃賑穀三萬石 頗似不足云 自備帖價穀中 限七千石加劃似宜 右議政金尙喆曰 今此加劃者 雖準萬數 賑後餘數 自當還錄 不必靳借 上特許一萬石(『영조실록』 48년 1월 24일)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