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군(天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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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천안군(天安郡)은 조선시대 충청도 청주목에 속한 군이다. 고려시대에는 천안부(天安府)였다. 조선시대에 군이 되었는데, 1416년(태종 16)에 영산군에서 천안군으로 이름을 고쳤고, 속현으로 풍세현을 거느렸다. 15세기에 호수가 506호, 인구가 2,385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14명, 진군(鎭軍) 6명, 선군(船軍) 203명이었다. 토지는 5,158결인데, 이 가운데 논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였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천안·목천·직산이 합쳐져 천안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천안은 영호남과 충청도가 만나 경기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지이다. 삼국시대보다는 후삼국시대부터 중요성이 높아졌는데, 천안의 가치에 주목한 사람은 고려 태조였다. 태조는 후삼국시기에 천안을 이동거점으로 삼았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동도솔(東兜率)과 서도솔(西兜率)을 합치고, 탕정·대목악군(大木岳郡)·사신을 합쳐 천안부로 삼고 도독(都督)을 두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환주도단련사(歡州都團鍊使)로 개정하였다. 1005년(고려 목종 8)에 단련사를 폐지하였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다시 천안부로 복구하였다. 1310년(고려 충선왕 2)에 모든 목과 부를 철폐할 때 영주(寧州)로 고쳤다. 1362년(고려 공민왕 11)에 천안부로 다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전국적으로 ‘주(州)’라는 명칭을 개정할 때 영산(寧山)으로 이름을 고쳤고(『태종실록』 13년 10월 15일), 군으로 다시 강등하였다. 1416년에 천안군으로 이름을 고쳤고, 속현으로 풍세현을 거느렸다.

풍세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감매현(甘買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순치현(馴雉縣)으로 고쳐 대록군(大麓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시대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1018년에 천안부의 임내로 삼았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4품 군수이다. 문과나 음서 출신자를 임명하였다. 훈도 1명은 조선후기에 폐지하였다. 좌수 1명, 별감 2명, 창감 2명, 군관 20명, 아전 15명, 지인 10명, 사령 12명, 관노 8명, 관비 4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천안은 조선후기에도 군을 유지하였다. 18세기 통계에 의하면, 밭 2,955결, 논 2,305결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목천과 직산 일부를 병합해서 15개 면이 되었다. 1900년(고종 37)의 『천안군양안(天安郡量案)』에는 15개 면으로 구성되었으며, 인구는 4,570호, 토지는 2,769결이었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 충청남도 천안군이 되었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천안·목천·직산 3군을 통합해 천안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영성읍지(寧城邑誌)』
  • 『천안군양안(天安郡量案)』

관계망